“영화는 실제 사건의 10분의1도 안 돼요. 실제는 훨씬 더 끔찍하고 참혹합니다.”

올해 9월 대한민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만든 영화가 있다. 영화 ‘도가니’는 1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성폭행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극적으로 구현해냈다. 하지만 이명숙(법학·86년졸) 변호사는 영화에서는 실제 상황을 모두 그려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아동인권전문변호사인 그는 2009년부터 2년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및 인권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법무법인 나우리의 대표 변호사다. 그런 그가 ‘조두순 사건’에 이어 ‘도가니 사건’을 재조명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2일(화) 오전11시 ‘도가니 사건’ 소송 준비로 여념이 없는 그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도가니 사건’, 가해자, 재단, 국가 상대 소송 준비 중

“지금은 소송을 준비하는 단계에요. 10월 초, 광주지방경찰청 이금형 청장님께 연락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은 현재 광주지방 경찰청에서 재조사 중이며 14명의 가해자가 입건된 상태다. 2000년대 초반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본 사건은  형사상 고소기간과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소멸시효도 지나 손해배상 청구 역시 불가능했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어요. 이 청장님은 피해자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라는 점과 가해자의 범행 정도가 나쁘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 논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법조문과 판례들을 뒤지고 성폭력 전문 법조인들과 법전을 펴놓고 고민한 결과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죠.”

그를 포함한 전문 법조인들조차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법률적인 이해가 부족했다. 성폭력특별법에 수록된 장애인에 관한 규정은 단 한 개의 조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4월15일 개정된 성폭력특별법 제20조 1항에 따르면 공소시효는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된다. 즉 피해자가 미성년이고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았으면 강간으로는 최소 7년, 강간치사는 10년 이내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의 경우 소멸시효가 지났어도 정신과적 후유 장애가 발생하면 불법행위가 계속되므로 소송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조두순 사건’때도 함께한 연세대 신의진 교수(정신과)에 피해자들의 진단을 부탁했다.

“피해자들은 언어 혹은 청력, 지적장애까지 있기 때문에 치료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화 통역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신 교수님은 대학병원에 소속돼 있어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기꺼이 하겠다고 하셨죠.”

광주 경찰청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피해자들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신 교수는 치료비도 받지 않고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피해자들을 관찰했다. 그 결과 상담을 받은 8명 중 6명에게서 심각한 후유증이 발견됐다.

“피해자 중 35살 난 아이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성폭력을 당했지만 15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어요. 인화학교 재학시절 언제 끌려가서 성폭력을 당할 지 모르는 두려움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잤다고 했어요. 아직까지도 밤이 두려워 밤새 잠을 못 이룬다고 했죠. 입원 후 약을 먹고 잤는데 ‘밤새 깨지 않고 잠을 잔 것은 기적’이라고 했어요.”

그런 그에게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물으면 ‘행정실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인화학교에서의 체벌은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선생님과 강제로 키스하는 것이었어요. 점심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아이들을 불러내서 괴롭혔죠. 그보다 더 심한 일도 많았지만...”

잘못은 국가기관에도 있었다. 교과부는 인화학교의 교과목이나 구체적인 커리큘럼에 대한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인화학교의 학생들은 한글로 된 문장을 읽거나 들을 수는 있지만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우리가 중국어나 아랍어를 듣기는 듣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과 같죠. 단어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아이들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은 수화에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았고 교직원이 학생들을 성폭행한다는 신고가 되풀이 되며 가짜졸업증명서를 발급해도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죠.”
현재 그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직접적인 가해자 14명과 우석재단, 교과부, 보건복지부 등 국가기관들의 감시 및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도가니 사건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들의 치료 및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고, 나아가 제2, 제3의 도가니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에 2차 피해 입힌 검찰 등 국가기관 대상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 있냐고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영(가명)이라고 답했다
.
“처음 나영이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너무 비참하고 끔찍해서 가슴이 아팠어요.”

‘조두순 사건’은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의 모 교회 화장실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다. 피해 아동인 8살 난 나영이는 당시 성폭행 피해로 성기와 항문의 기능이 훼손된 것은 물론 신체 주요기관의 80%가 소실돼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해결의 전문가 모임인 나우리팀은 나영이를 돕기로 결정했다. 나우리팀은 이 변호사와 신 교수, 이미경 전 성폭력상담소 소장,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이영주 동부지검 부장검사, 황은영 인천지검 부장검사 등 10여명의 성폭력 전문가들로 구성돼있다. 나우리팀은 퇴근 후 이씨의 집에 모여 새벽 1~2시까지 토론하는 등 나영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정확한 피해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신 교수에게 치료를 받던 나영이와 아이의 부모를 만나 상담하기도 했다.

“언론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심각했어요. 저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들에게 상담내용을 기록한 이메일을 보냈죠. 병원, 경찰, 검찰, 법원, 여성가족부, 조두순을 변론했던 법률구조공단 모두 아이에게 2차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 요지였어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죠.”

그의 이메일을 받은 인권이사들은 격분했고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2차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검찰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래서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이라도 바꾸자는 의도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죠.”

그가 지적한 검찰의 가장 큰 잘못은 피해아동을 조사하는 환경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검찰은 항문 복원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나영이를 2008년 1월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에 검찰청으로 불러냈다. 누워있기도 힘든 아이를 딱딱한 철제 의자에 앉혀 놓고 악몽 같던 그 날의 기억을 4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말하게 했다. 비디오 기기 조작 실수로 진술 내용이 제대로 녹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특별법과 검찰 내부규칙에 따르면 편안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수사를 하도록 돼있어요. 나영이가 입원 중인 중환자실로 출장수사를 했어야 했고 저녁이 아닌 낮에 병원으로 검찰 차량을 보내 데리러 왔어야 했는데... 검찰은 피해아동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죠.”

그는 나영이가 입은 ‘2차 피해’를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재판부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 나영이에게 1천만원, 부모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낸 기적은 승소 판결만이 아니었다. 전국의사협회는 성폭력 전담 의료팀을 신설했고 대한변호사협회는 전국의 성폭력관련기관과 경찰청에 성폭력전담변호인단을 조직했다. 작년3월에는 친고죄폐지, 전자발찌부착, 화학적 거세 등 성폭력특별법이 대폭 개정됐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서 음주감경 규정을 완전 폐지했다.

“진상조사와 국가상대 소송과 함께 여론도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정말 다행스럽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여성․아동인권전문변호사의 길을 걷기까지

그는 현재 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아동학대 등 여성과 아동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나우리의 대표 변호사다. 그는 본교 대학원에서 가족법을 전공한 이혼전문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어떻게 여성․아동인권변호의 길을 걷게 됐냐고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저를 찾아와서요.” 그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일부로 그들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 변호사가 됐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자 변호사가 15명이 채 안 됐죠. 그래서 여성이나 아동문제는 법의 사각지대였어요. 일은 힘들지만 돈 안 되는 사건이라고 다들 꺼려했죠. 도움을 요청할 데가 없었던 많은 여성단체나 아동단체에서 도와달라고 저를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됐죠.”

그렇게 시작한 아동․여성인권변호의 길. 변호사가 된지 2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평을 듣는다.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의 사건과 국가상대 소송을 많이 맡았죠. 돈 보고 한 것도 아니었고 명예 때문도 아니었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 밤잠을 못 이룬 적도 많았다던 이씨. 4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세 번이나 울렸다. ‘바쁘셔서 어떡하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늘 하던 일인걸요. 제게는 작은 일이지만 그들에겐 큰 도움이 되잖아요. 제가 아는 법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어 오히려 다행입니다.”



이지훈 기자 ljh5619@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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