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탑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뉴욕, 밀라노, 파리의 런웨이에서 당당히 워킹하는 본교생이 있다. 탑모델 이현이(경제․11년졸)씨다. ‘2011 아시아모델상’을 수상하고, TV 광고에도 여러번 얼굴을 내미는 등 올해는 가히 ‘이현이의 해’다. 졸업 후에도 모델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를 8일(화)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에요. 저는 입학했을 때만해도 총만 안들었을 뿐 패션테러리스트였어요.”

처음 이씨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본교에 입학했을 당시 자신의 옷차림을 ‘패션 아노미 상태’라고 표현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교복과 체육복만 입다가 대학교에 들어와 매일 다른 옷을 입으려니 힘들었어요. 친구들이 제 옷차림을 보고 혀를 끌끌 찰 정도였죠.”

그랬던 그는 새내기시절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무대를 사랑하게 됐다. “무대에서 느끼는 현장감이 정말 좋았어요. 키가 커서 배역을 많이 맡지는 못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제가 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큰 키로 무대에 서서 빛날 수 있는 직업을 원했던 이씨는 2005년 ‘SBS 한중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게 됐다. 그는 ‘되면 해보고 아니면 말자’는 심정으로 원서를 냈다. 그렇게 ‘한번 도전해 볼까’로 시작했던 모델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부모님도, 자신도 몰랐다.

그는 현재 샤넬(Chanel), 안나수이(Anna sui)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무대를 누빈다. 이씨는 뉴욕으로 간 첫 시즌에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맥(MAC)의 세계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작년 ‘2010 FW 에르메스(Hermes)쇼’에서는 사전 캐스팅 없이 바로 모델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에르메스는 패션하우스들 중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모델로 캐스팅되기도 힘든 곳이에요.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인 장 폴 고티에가 저를 좋게 봐주셔서 쇼 전날 바로 캐스팅 돼 무대에 올랐어요. 가장 벅찼던 순간이 아닐까 하네요.”

그가 패션 중심지인 뉴욕과 파리, 밀라노에서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무대에 서며 승승장구하기까지는 힘든 시간이 있었다.

72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모델이 됐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신인 때 섰던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지정된 포즈를 혼자만 안했던 적이 있었어요. 쇼가 끝나고 혼날까봐 뒤도 안돌아보고 울면서 도망갔어요. 첫 화보촬영은 보그(vogue)지였는데 너무 긴장해서 포즈를 못 잡으니까 한 컷 찍는데 3~4시간씩 걸렸죠.”

한국에서 사진과 프로필, 포트폴리오 등을 뉴욕, 파리 등의 에이전시에 보내고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모델은 1인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혈혈단신으로 가서 주소와 디자이너 이름만 적힌 종이를 들고 찾아다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돌아다니려니 힘들었죠. 외로움을 많이 타는 타입인데, 외로워서 더 지쳤어요.”

무대 체질이라 원체 떨지 않는 이씨지만 유일하게 긴장하는 때도 있다.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무대에 서기 전 신발이 컸지만 ‘괜찮겠지’ 생각하고 나갔다가 무대 중간에서 한 쪽이 벗겨졌어요. 그런데 다른 발로 신발을 뻥 차버려서 둘 다 벗고 까치발을 든 상태로 돌아왔죠. 그 실수를 하고 나선 신발이 크면 약간 떨려요.”

이러한 경험들은 모델 이현이를 더욱 성장시켰다. “홀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엔 더 힘들었지만 혼자서 다 해냈다는 뿌듯함, 성취감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모델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 때, 입기 싫은 옷을 입고 촬영할 때 등 힘들 때가 정말 많아요. 그렇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장맛비소리가 들려요. 저를 향한 수백 개의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소리죠. 그럴 때마다 ‘난 이 일을 정말 사랑해. 정말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모델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영역이잖아요. 진입한 다음에 얼마나 성장하느냐는 자기 몫이지만 여기 속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앞으로 후배들이 ‘롤모델은 이현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수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쇼는 작년 경주에서 진행됐던 한복 패션쇼다. 이 때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무대에 선 그를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보러 왔다. 그들은 메인으로 무대에 선 이씨를 보고 자랑스러워했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도 이 일을 반대하시고 모델에 대한 편견이 있으셨는데 이후로 인정받게 됐죠. 그런 점에서 제게 뜻 깊은 쇼예요.”

‘엄친딸’로도 알려진 이씨도 하마터면 중퇴생으로 남을 뻔 했다. 2008년 뉴욕에서 활동하게 돼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없었지만 이미 휴학연한인 3년을 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어서 김세완 지도교수님께 구구절절이 메일을 보냈는데 ‘자퇴하세요’라고 답장이 왔어요. 이땐 교수님이 조금 야속하게 느껴졌죠. 자퇴처리가 되고 난 후 속상해서 뉴욕에서 많이 울었어요.”

다음날 김 교수가 보낸 메일은 그를 눈물짓게 했다. “‘잘 해낼 거라 믿는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돌아와도 늦지 않으니 기다리겠다’는 메일을 보내주셨는데, 감사해서 또 많이 울었어요.”

그는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작년 1학기 재입학해 올해 2월 졸업했다. 캠퍼스에 돌아다니는 후배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이씨.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그랬듯 ‘과감히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스스로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갖고 도전해보세요. 저 역시 감히 도전해봤기 때문에 모델 일이 저에게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잖아요? 적어도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고 졸업해야죠.”

 

△ 이화인 이현이와 인터뷰 뒷이야기

이씨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가족들이 모두 키가 큰가?' 라는 질문에 어머니 아버지는 크지 않지만, 동생은 크다고 답했다. 그는 "옆학교 다니고 있고 키 184cm인 남동생이에요. 90년생에 현재 솔로인데." 라며 웃었다.

모델이 되기 전까진 그도 이화사랑 참치김밥에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먹는 평범한 이화인이었다. “교양합창시간에 졸다가 걸려서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축제 때는 친구들끼리 아이스크림을 팔았어요. 의자가 좁고 허리를 많이 굽혀야 하는 학관110호는 수강신청할 때 피했죠. 시험 볼 땐 어쩔 수 없었지만.”

‘엄친딸’로 잘 알려진 이씨는 모델로서는 다소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토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마케터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대외활동을 해왔다.
“활발한 성격이라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학점은 3점 좀 넘는데, 독한 면이 있어서 3학년 1학기 때 모든 과목 재수강해서 전부 A-를 받았어요.”

그가 인상 깊게 들었던 수업은 새내기 시절 들었던 최샛별 교수(사회학과)의 ‘1학년 세미나’ 과목이다. 이씨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 수업에서 그는 매주 ‘미팅을 하고 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 다음 숙제는 ‘애프터를 받아라’ 등이었어요. 새내기땐 미팅소개팅 합쳐서 50번도 넘게 했을거에요. 이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뉴욕에서 ‘올래?’ 했을 때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1초도 망설이지 않았죠.”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는 모습조차 화보였다. 앞으로 더욱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대로 세계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정서은 기자 west_silver@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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