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30년 동안 여성 인권 증진에 힘쓴 여성 운동가 권미혁씨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취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로 취임한 권미혁(법학·81년졸)

“모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여성운동을 꿈꿉니다.”

 

1월12일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상임대표에 취임한 권미혁(법학·81년졸)씨가 3년간 맡게 된 여성연합의 지향점으로 밝힌 내용이다.‘3월8일 세계여성의 날’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18일(금) 영동포구에 위치한 여성미래센터에서 만났다.

전국 6개 지부와 27개 회원단체가 모인 여성연합의 대표직을 맡은 그는 약30년 동안 끊임없이 여성 차별 철폐와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했던 여성 운동가다.

그의 여성운동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여성부 활동에서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는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및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문제가 대두되던 때였다. 그는 민청련 여성부에서 활동하면서‘여성문제’에 눈을 떴다.“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생각하던 때도 여성의 삶에는 차별이 많았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들이 여성운동을 통해 남성중심 사회를 바꿔야 했죠.”

민청련 활동을 시작으로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 창립멤버로 나섰다. 당시 여성 노동자의 삶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개선을 꾀하는 여성단체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사회에 산재하는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여성운동단체가 필요하다고 동의한 약100명이 모여 한국여성민우회의 창립을 이끌었어요. 당시 우리는 여성문제에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운동을 지향했죠.”그는 2005년부터 6년간 한국여성민우회의 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권씨는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로 활동하면서 2009년 최저임금 보장 및 개선에 대한 긴급공동성명 발표에 참여했고 작년에는 여성단체 및 활동가 연대모임인‘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여는 여성모임’창립에 힘을 쏟는 등 다양한 형태의 여성운동을 행해왔다.

권씨가 여성운동에 한평생을 헌신한 바탕에는 본교 법과대학(법대) 재학시절의 경험이 있었다. 그는 2학년 시절 참여한 야학(야간에 수업을 하는 비정규적 교육 기관), 농촌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학생회 재건 활동을 거치며 자연스레 노동운동,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야학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회 부조리를 느꼈다.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중·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한 야학 학생들을 보는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때까지는 누구든 원한다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죠. 노동자, 농민 자녀들이 진학을 포기하고 야학을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핍한 삶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대학사회에 적용된 독재정권의 부조리함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권씨는 1980년대 초 학생회 역할을 담당하던 대학학도호국단을 없애고 학생회를 부활시키는데 힘썼다. 학도호국단은 정부주도로 결성된 학원통치기구였다.

“학도호국단의 구성학생들은 학교에서 지명한 사람들이었어요. 1980년 1학기, 자발적 결사체인 학생회를 부활시켜 투표를 통해 그 해의 학생회장을 선출했죠.”

여대생이 전체 대학생의 10%에 미치지 못했던 시절, 권씨는 학창시절을 통해 사회운동가로서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됐다.

“사회를 변화시킬만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 지식인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여성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권씨는 앞으로 3년간 여성연합의 상임대표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여성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매체환경, 젊은 층의 사고방식 등을 적용시켜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여성운동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그의 꿈은 자신이 여성 운동가로서 활동한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는 것이다. 여성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권미혁 대표. 그의 글에 기록될 남은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한주희 기자 hjh230@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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