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잡지 <빅이슈(Big Issue)> 한국판이 7월5일 창간됐다. <빅이슈>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로 현재 약 30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빅이슈>는 노숙 경험이 있는 판매원에게 1부당 1천4백원에 제공된다. 판매원은 제공받은 잡지를 1부당 3천원에 팔아 1천6백원의 소득을 올리게 된다. <빅이슈> 구현지(수교·96년졸) 편집국장은 “노숙인 자립을 돕고, 독자들도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착한 잡지”라고 말했다. 본지는 <빅이슈> 판매를 통해 모은 돈으로 자활을 시작한 2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빅이슈(Big Issue) 편집장 구현지(수교·96년졸)씨

 △트럭 한 대 마련해 전국 식당에 식자재 납부하고 싶어…홍삼용씨

본교 정문 앞에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몇 번이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빅이슈> 판매원인 홍삼용(65)씨다.

홍씨가 처음부터 노숙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70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홍씨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리어카 장사부터 시작해 약30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그러나 1998년 5월 홍씨의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어요. 3번 정도 자살 시도를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죠.”그는 그 이후 삶의 의지를 잃고 노숙자가 됐다.

노숙자로 전전하던 시절 막노동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 홍씨는 공사장 2층에서 떨어져 팔에 금이 갔다. “그 때부터 일도 못하고 본격적으로 노숙자가 됐어요. 단 한 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죠.”
그러던 그에게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노숙자 쉼터인 ‘다시서기’에서 <빅이슈> 판매원을 모집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요일마다 무료 점심을 제공받던 신설동의 한 교회에서 <빅이슈> 잡지 발행인이 대표로 있는 봉사단체 ‘거리의 천사들’의 직원을 만났고, 그의 설득에 용기를 냈다.

그는 7월부터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빅이슈>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2시간 동안 약20권을 팔았다. 하지만 노숙생활과 부실한 영양 상태 때문에 땡볕에서의 2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판매국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지는 곳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8월부터 영업장소를 이화여대로 옮겨줬죠.”

본교 앞으로 판매지를 옮긴 그는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점심도 거르며 일했다. 단골 손님을 만들기 전까지는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8월 중순까지 30권 미만이었던 그의 판매량은 9월로 들어서면서 크게 늘었다. <빅이슈> 판매국에 따르면 그의 판매량은 상위 3등 안에 든다. 지금 홍씨에게 가장 큰 기쁨은 판매 기록을 깨는 것이다.

“8월 초에 36권을 팔고 뛸 듯이 기뻤는데, 8월30일에는 74권을 팔았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제 힘으로 트럭 한 대 장만하고 싶습니다. 식자재 납품하면서 다시 한 번 용기내서 살아봐야죠.”

기자가 홍씨를 인터뷰한 30분 동안 3명의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매번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그의 눈빛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연세대 앞에 수원댁이 떴다…김수원씨
연세대 정문과 독수리약국 사이의 굴다리 밑에는 춤추는 판매원 김수원(50)씨가 있다. 그는 춤을 추는 것처럼 흥겹게 몸을 움직이며 <빅이슈>를 판매한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의 근육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의 거동은 흡사 춤과 같다. 7일 (화) 김씨는 판매원의 상징인 빨간 조끼가 아닌 파란 조끼를 입고 있었다.

판매국 교육과정에 따라 신입 판매원은 선배 판매원과 동행해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 김씨는 도우미임을 나타내는 파란 조끼를 입고, 판매원 후배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에게서 교육을 받았던 후배 2명은 현재 압구정, 여의도에서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고 있다.

“교육 잘 해줬다고 오늘 판매국 사원들이 포옹해줬어요. 판매를 시작하는 우리 신입사원들을 보면 내가 다 뿌듯합니다.”

지금은 능숙한 그도 처음에는 잡지를 판매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안녕하세요. <빅이슈> 코리아입니다’라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커피 한 잔 값으로 여러분의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라고 외쳤죠. 장사꾼이 되어야 하니까요.”

한 번 외치고 나니 어려울 것이 없었다. 김씨는 본인의 이름으로 별명을 만들어 ‘신촌에 수원댁이 떴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날 그 날 외치고 싶은 말을 만들어 소리칩니다. 8월에는 ‘엄마 나 취직했어’라고 외치기도 했죠.”

김씨는 7일(화) 영등포의 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창간호가 발매된 7월부터 그간 모은 수입으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현재 그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약30권이다. 그의 판매 목표는 하루 100권이다.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나 분식집을 하고 싶어요. ‘수원댁 분식점’으로 나를 다시 인터뷰하러 올 날이 머지않을 거예요.”


 최슬기 기자 redwin2026@ewhain.net
 사진: 안은나 기자 insatiabl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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