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란 교수 등 12명의 각 대학 국문소설 연구자, 5년의 노력 끝에『소현성록』과 『임씨삼대록』등 5권 출판해


“꼬박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나온 책을 보는 순간 드디어 전공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과도 국문 장편소설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1967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발견된 국문소설 필사본 89종 중『소현성록』과『임씨삼대록』등 5권의 국문 장편소설이 2월25일(목) 현대 국어로 번역돼 출판됐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였던 국문화연구원 조혜란 연구교수를 4일(화) 한국문화연구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필사본 국문장편 소설들이 발견된 후 약30년간 고전소설 연구자들은 이 소설을 대상으로 국적 및 작품론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한국문화연구원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중, 2005년 번역을 시작했다.“우리의 공동 자산을 연구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전부터 현대 국어로의 번역에 목말라 있던 고전 소설 연구자들이 모여 팀을 만들었죠.”

현대 국어로의 번역 과정은 한문 자료 못지않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조 교수는“소설들이 200자 원고지 6천~7천 장에 달하는 긴 서사이다보니 읽는데만 1학기가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수 백명이 넘는 등장인물도 어려움을 더했다.

승진으로 명칭이 바뀌거나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벼슬이 반복돼 인물을 구분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했다. 또 양자로 들어가는 인물들도 있어 섬세하게 구별하며 작업할 필요가 있었다.“등장인물을 구분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가계도를 그려 문제를 해결했죠.”

한글 소설이긴 하지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필사본인데다 중국의 유명한 옛 문장이나 역사적 사건을 인용한 부분이 많아 해석을 더디게 했다.“당시 한자를 한글로 옮길 때 통일된 맞춤법 규칙도 없었던데다, 개인의 발음 차이로 인해 한 글자를 여러 방식으로 표기해 버렸던 거죠.”

번역 팀원들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기 위해 17세기 국어사전, 중조대사전 등 조선시대 어휘 사전을 모두 뒤졌다. 단어 1개 때문에 반나절을 보낸 적도 허다했다.

낙선재에서 대하소설 같은 국문장편소설들이 발견되기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조선 시대 장편 대하소설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조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연구자들만 알고 일반 대중들은 그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는 국문 장편소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번역에 첫 발걸음을 옮겼다고 했다.

모든 작품들이 초역이기에 일반인들도 읽기 쉬운 방향으로 번역하는 한편, 소설 원본에 최대한 충실한 번역을 하려 하였다.“정확한 번역을 위해 추정해서 번역한 것에는 각주를 달고, 끝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은 미상으로 처리했어요.”

이 같은 번역 과정을 거처 조 교수를 비롯한 프로젝트 팀은 결국 5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국문 장편소설의 효시인『소현성록』은 군자가 되려는 효자 소현성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고,  나머지 작품들도 삼대에 걸쳐 두세 가문을 중심으로 한 혼인담과 가족 갈등이 이야기의 골조를 이룬다.

이번 번역에는 본교 및 서울대, 서강대의 고전소설 전공자 및 근대국어 전공자가 참여했다. 12명의 연구원들이 서로의 원고를 검토, 수정해 완성된 5권의 소설 번역은 연구자 간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각 대학 연구자들 사이에 학문적인 유대가 강화됐다. 번역된 작품에 대한 논문들이 생산되면서 연구가 활성화된 한편 대중이 국문 장편소설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고전문학을 타자화하는 문화적 분위기를 아쉬워하는 조 교수에게 이번 작업과 관련한 바람은 무엇인지 물었다.“이번 번역 프로젝트처럼 작품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느낌을 연구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도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국문장편소설의 현대어역본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군요.”

이소현 기자 sohyunv@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