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미 교수(현대무용 전공).
헐렁한 연습복 티셔츠에 깔끔하게 묶어 올린 머리, 눈빛만큼은 아직도 뛰노는 무용수의 그것처럼 살아있다. 1982년 27세의 나이로 제4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청동무늬’를 안무해 안무상, 음악상, 미술상을 ‘최연소 수상’했던 조은미 교수(현대무용 전공).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도 ‘현대무용단­탐 제10회 솔로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6일(수) 체대A동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습복 차림의 조교가 차를 내온다. 기자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자 호탕하게 웃으며 걱정 말고 들라는 조 교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에게서 교수의 권위적인 태도란 찾아볼 수 없다. “선생의 권위란 직책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용수들은 신체가 악기예요. 그러니까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죠. 무대에서는 한 박자만 느려도 옆 사람과 충돌하게 돼요. 물론 너무 빨라도 충돌하죠.” 조 교수에 따르면 무용은 한정된 공간(무대)에서 몸짓으로 다양한 선을 긋는 시각예술이다. 선들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살아있는 조각품이자 음표인 무용수들은 항상 몸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무용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구도자의 자세죠. 자세를 배우는 학생들은 항상 성실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어요. 열의를 채우기에 부족한 체대 시설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보면, 참 예뻐요.”
본교 무용과 졸업생들은 한국 무용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냈다. 현재 조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현대무용단­탐’은 살아있는 성적표나 다름없다. 본교 무용과 대학원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탐 무용단은 조 교수가 대학원생이었던 1980년 창설됐다.

그 후 1982년부터 2006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무용제, 서울공연예술제, 서울무용제에서 대상과 안무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정기공연과 ‘레퍼토리 공연’, ‘솔로공연’ 등 다양한 기획공연을 통해 독특한 예술성을 인정받아온 단체다. 탐 무용단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조 교수의 헌신과 노고가 뒷받침됐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날이 허다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함께 춤추고 안무작업을 하다보면 시간이 빠듯하지요. 학부생, 대학원생들에게 요구되는 춤교육 과정을 그들에 맞게 지도하다보면 하루 3시간씩 자는 날도 많아요. 덕분에 학생들은 저를 ‘스파르타 조’라고 부르더군요.”
탐 무용단의 무대 위에는 그의 모든 예술철학과 테크닉이 녹아있다. “예술가는 스타일을 만들어놓고 죽는다고 하죠. 탐의 거름이 조은미의 춤이듯이요. ”

조 교수는 그의 55년 삶을 ‘부지런함’이라고 표현했다. 항상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그. 예술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부지런하게 살면 해결할 수 있지만, 부지런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정도전이 조선왕조실록에 쓴 글 중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항상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해요.”

일생을 빠르고도 경쾌한 템포로 살아온 조 교수. 문득 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한다. 봄꽃들이 휘날리며 흩어지고 있다. 사각의 창틀 속 사방으로 선을 그으며 떨어지던 꽃잎의 그것은, 분명 춤이었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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