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상대적으로 불편을 더 겪어온 여성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면, 남성은 물론 장애인 등 소외층도 행복한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여행(女幸) 프로젝트’(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비롯해 서울시의 여성, 아동·청소년 등의 정책을 총괄하는 조은희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을 2일(목) 여성가족정책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약속 시간이 되자 현장 업무를 마친 조은희(영문·84년 졸) 여성가족정책관과 결재서류를 든 직원들이 그의 집무실로 몰려들었다. 그는 10여 분간 정신없이 급한 서류들을 처리한 후에야 기자와 마주앉았다. “전자결재 외에 직접 보고 받는 서류만 하루 10여건 이상이에요. 정시 퇴근은 상상도 못 합니다”

조 정책관은 2008년 5월부터 여성가족정책관을 맡아 오세훈 서울시장의 든든한 ‘여행(女幸)’ 동반자가 됐다. ‘여행(女幸)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사업성과를 인정받아 3월3일(화) 열린 제5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세계 많은 도시들이 도입해야 하는 매우 좋은 정책”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여행(女幸) 프로젝트’는 구두를 신은 여성을 위한 보도블록 정비, 여자 화장실 개수 늘리기, 남성 키에 맞춰져있던 버스 손잡이 높이 낮추기 등 여성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업들을 진행한다. 그는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거대담론도 필요하지만 생활에서 느끼는 3불(불만, 불평, 불안)을 해결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부 일자리 2만8천개 창출이 목표인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는 2월부터 추진 중이다. 관련 사업 중 ‘장롱 자격증 되살리기’는 전문 자격증을 보유했지만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에게 재교육 및 취업을 알선하는 서비스다. 그는 “기자시절 일에 매진하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며 “아이를 위해 일을 쉬었던 경험으로 프로젝트를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험이 곧 정책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언론인,  교수 등 그의 다채로운 경력이 바탕이 됐다. 그는 84년 본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95년부터는 3년간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98년부터 1년 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자리를 옮겼다. 그는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시절 행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겨 정책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2003년 단국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방면에서 활약한 그는 매 순간을 천직으로 삼았다. “항상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어요. 기자 시절에는 기자가 천직 같았고 또 지금은 정책관 일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에도 팔방미인이었을 것 같지만 조 정책관은 그 시절을 ‘방황기’라고 추억한다. 영문학도였지만 해외연수는 엄두도 못 낼 가정형편과 80년대 민주화 항쟁 등 사회분위기는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별명이 바로 오뚜기”라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력을 갖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고 말했다.  

서울시 최고위 여성 공무원인 그가 취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전하는 생존비법은 두 가지다.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이은지 기자 eunggi@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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