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형도운영위원회(GGC)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성효현 교수(사회생활학 전공).
 “만약에 바다 속에 암초가 있다면 큰 배가 지나가다가 좌초될 위험이 있겠죠? 저는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해저 지형도를 만들어요.” 

한국인 최초 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형도운영위원회(GGC) 위원. 성효현 교수(사회생활학 전공)의 새로운 직함이다. GGC는 전 세계 해양의 항해정보 등을 총괄하는 기구로 국제 해저지형도 제작과 해저지명집 발간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GGC 위원으로 뽑힌 그는 올해 9월 퇴임하는 캐나다 데이비드 모너핸 위원 후임으로 5년간 활동하게 된다.

그가 2005년부터 참여한 국립해양조사원의 ‘해양조사 사업 프로젝트’ 경험은 이번 선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동해 해저지형을 연구해 이름을 붙이고 모나코에서 발표를 했어요. 그 때 우리나라의 해저지형 10개가 국제해저지명목록집에 등록되는 쾌거를 올렸죠.”

GGC 위원 선출이 마냥 기쁜 것은 아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요. 세계적인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우리나라의 이익도 반영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국제 해저지형 동향을 우리나라에 빨리 소개시켜줄 수 있다는 점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그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해 명칭 싸움을 지적하며 “선진국들이 원칙이나 지명을 정하면 끼어들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쟁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 그가 GGC 위원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이유다.

GGC 위원으로서의 포부를 밝히는 당찬 그도 한 때는 고등학교 교사를 꿈꾸는 평범한 사범대 학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발령이 났는데 ‘선생님’이란 직업이  너무 어렵더라구요.”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본교 사회생활학과 석사과정을 끝내고 미국 UC 리버사이드 대학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떠났다.

“그 때 지형학을 공부했는데 말이 안 통하니까 힘들었어요. 학생비자로 미국에 갔는데 공부를 잘 못하면 학교에서 쫓겨나 불법체류자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는 성실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인생의 황금기를 공부로 보내야 하나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공부를 하다가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집에 가곤 했다. 덕분에 그는 학위기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시련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그가 공부를 하며 절실히 느낀 교훈이다.

학부 시절부터 지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지리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박사과정 시절 미국 샌버날디노 산맥 지형 답사를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날은 저물어 주위는 깜깜하고 야생동물의 눈들이 보이는데, 무조건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면 길을 만날 거라는 생각만 했어요. 결국 길을 찾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죠.” 무서운 상황에서도 그는 지리학 이론을 생각하며 그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런 끈기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그를 1991년 3월 한국지형학회 이사직을 시작으로 현재 한국 지도학회 회장의 자리에 앉게 만들었다. 또한 본교 사회생활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그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이 있다면 바로 도전하라”고 말했다.

“만약 그게 자신의 길이라면 문은 바로 열릴 거예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하게’ 늙은 성효현 교수. 55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 ‘꿈’과 ‘깡’을 가지고 세계로 전진하는 그의 모습에서 깊고 넓은 바다의 모습이 비춰지는 듯하다.            

강아영 기자 syungayoung@ewhain.net
사진: 고민성 기자 minsgo@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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