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한 특이한 신입생 인터뷰

 <편집자주>
 우리 학교에 첫 입학사정관제 신입생 30명이 입학했다. 우리 학교는 2009년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수시 2학기­Ⅰ 특수재능 우수자 전형의 신입생을 선발했다.  입학사정관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입학사정관은 학생의 성적,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선발한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우리 학교의 특수재능 우수자 전형은 교과 외의 특별활동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학생과 우리 학교가 인정한 각종 대회 수상자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각 요소의 점수 비율은 서류전형 80%, 구술·면접 20%다. 교과 성적이 아닌 그들만의 독특한 재능으로 입학한 김지민(보건관리·09), 신혜리(건축·09), 이주영(사과·09)씨를 만났다.

 

봉사로 보낸 430시간, 제게는 일상이었어요

모두가 의무로 정해진 20시간의 봉사를 꺼릴 때 400시간이 훌쩍 넘는 봉사활동에 묵묵히 참여한 사람이 있다.

김지민(보건관리·09)씨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봉사활동 이력을 인정받아 우리 학교 새내기가 됐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교내 봉사동아리장, 마산·창원 지역 연합 봉사동아리 단장 등으로 활약했다. 이렇게 쌓인 그의 봉사 시간은 430시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으로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7년 IWO(국제워크캠프기구)가 주최한 몽골 봉사활동을 꼽았다. 그때 김씨는 몽골의 사막캠프장에서 생활하며, 마른 밭을 일구고 잡초를 뽑아 수로를 만들었다. 그는 모래밭에서 수레를 끌다 물을 쏟아 눈물지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물이 매우 귀한 곳인데  실수로 물을 다 쏟았었어요. 도와주려고 한 일이 짐이 돼 너무 미안했죠.”

 

김씨는 외부활동을 통해 교내의 봉사동아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교장선생님의 지원을 받아 교내 첫 봉사동아리를 창립했다. 동아리원은 20명 남짓이었다. 그는 10개월간 동아리 기반을 다져 고등학교 3학년부터 봉사동아리 ‘예그리나’(‘서로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주말이면 아침9시부터 봉사를 다녔다. 어버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평일이라도 노인들을 찾았다.

동아리 활동 때문에 부원의 부모님들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입시가 코앞인데 봉사활동을 규칙적으로 다니니까 부모님들이 좋아하지 않으셨죠.” 그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허락해달라는 내용은 A4용지 2장을 꽉 채웠다. 그 후 부모님들도 이해해주셨다. 2007년

가을에는 노인들과 1박 2일간 캠프를 다녀왔다.

우리 학교 합격 통보를 받은 후에도 그는 쉬지 않고 봉사했다. 작년 10월∼11월에는 틈틈이 익혀둔 일본어 실력으로 창원 람사르 총회에서 우포늪에 관련한 통·번역도우미 역할을 했다. “힘들어도 제대로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포늪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김씨의 롤모델은 WHO(국제보건기구) 전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다. 그는 이박사의 열정, 근면, 성실함과 겸손함을 모두 배우고 싶다.  “먼 훗날 WHO 사무총장이 돼 누군가 날 이야기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황윤정 기자 gugu0518@ewhain.net

 

나무 조각 몇 만개로 에펠탑 제작했어요

신혜리(건축·09)씨는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꿈을 시작해보겠다’는 일념으로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건축 동아리 ‘Archi(아키)’를 창립했다. 그 덕에 입학사정관제로 우리 학교 건축학부에 합격했다.

신씨는 고등학교 1학년 말, 건축동아리를 만들겠다며 김재영 교감(안산동산고)을 찾아갔다. 김 교감은 “행정업무 외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신혜리 학생이 동아리 광고지까지 전부 준비해 왔다”며 “없는 길도 만들어가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동아리와 함께 건축 올림피아드 준비를 하면서 그의 건축 공부도 시작됐다. 친구들과 남산 한옥마을, 운현궁, 각종 건축대전을 돌아다니며 같이 보고 생각하는 일은 바빴지만 행복했다.
그들은 공모전에도 참가했다. 고등학생이 참가할 수 있는 건축 공모전이 많지 않아 시각디자인 관련 대회를 준비했다. 인천 이름 디자인 공모전에서 그는 인천의 영문자 INCHEON의 각 글자마다 의미 있는 뜻을 찾아 시각화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은 좋은 의미로 글자를 구성하기 위해 영어사전을 전부 읽어야 했다.
그는 “영어사전 한 권을 꼼꼼히 다 읽었는데 상을 받지 못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가 평생 못 잊을 건축 활동은 고등학교 축제를 위해 만들었던 ‘에펠탑’과 ‘만리장성’이다. 축제 준비기간인 한 달을 매일같이 자정이 넘도록 작업했다. 10cm 길이의 나무 조각 몇 만개를 자르고 붙여 조립했다. 본드심을 200개도 넘게 썼다. “얇은 나무 조각들로 한 달 동안 정성을 쏟았더니 정말 에펠탑이 만들어지더라구요.”
교실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거꾸로 붙여나간 만리장성은 20cm의 벽돌 수백 개로 완성됐다.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다 보니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아무도 제가 수시에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처음 입학 지원 서류 준비할 때는 많이 울었죠.” 그러나 그는 부족한 공부시간 만큼 채워둔 건축동아리 활동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계단 딛고 올라섰다.
건축에 대해 오랜 시간 공부해 온 신씨지만, ‘건축학도’라는 타이틀은 두렵다. 밤샘 작업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그는 벌써부터 고민이다. “그래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숨 가쁘게 돌아갈 작업실 생활이 기대돼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전공으로 삼은 지금, 그는 어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싶다.

황윤정 기자 gugu0518@ewhain.net

 

환경 운동가, 잡지 창간인 두 이름의 90년생

“어떤 문제든 충분히 고민하게 만들었던 대안학교의 수업들이 이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생각해요.”

이주영(사과·09)씨는 타고난 활동가다. 그는 인도 빈민층 아이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 등 4개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자신이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수능시험 직후에는 ‘버마 민주화 팀’에서 친구들이 풀지 않은 문제집으로 바자회를 개최했다. 모은 기금은 버마 난민촌에 보내줬다.

버마 민주화 팀은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기획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팀이다. 버마(Burma)는 군사 정권이 명명했던 미얀마(Myanmar)의 전 국가명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미얀마라고 부르지 않아요. 미얀마는 군부독재가 만든 국가이름이기에 저항의 의미로 버마라고 부르죠.” 

그는 밀레나카네바 감독의 ‘책임회피’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학교 친구들과 팀을 구성했다. 그 이후 다큐멘터리 상영회, 버마 민주화에 관한 토론회, 버마 민주화 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실행했다.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고3이 되던 2월에 친구 2명과 함께 ‘지구방위대’라는 팀을 조직했다.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중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곰들이 쉴 빙하가 녹아 헤엄치다가 죽는 장면을 본 것이 계기였다. “동물을 좋아해서 그 장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는 올해 환경잡지를 창간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던 것은 대안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대학을 강요하지 않는 가풍도 한몫했다. “부모님께서 ‘대학에 꼭 진학할 필요 없다. 네가 할 일만 하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막상 합격통지를 받자 그는 대학에 진학해야 할 지 고민이 됐다. 그도 여느 대안학교 학생들과 같이 대학 진학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세미나에 다니거나 NGO 인턴으로 근무할까 생각 했어요.” 진학을 결심하게 된 전환점은 선생님과의 상담이었다. 그의 고3 담임은 “대학 진학은 너의 목표가 아니지만, 대학이 너의 목표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이라면 의미있지 않느냐”며 이씨가 대학에 진학하도록 결심을 도왔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외활동으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공부’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한 번 받아보는 게 목표예요!”      

정이슬 기자 iseul1114@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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