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졸업생 박윤자 인터뷰

구희언 기자

 

  “노인이라는 명패를 내려놓으세요.”, “노인들의 귀감!”
  예순이 넘어 석사학위를 받은 박윤자(사회복지전문대학원 석사과정)씨의 이야기가 기사화돼 인터넷에 게재된 이후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는 6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에서 사회복지전문대학원·국제전문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내친 김에 박사 과정에도 도전하려 해외 유학을 결심했다는 그의 열정 앞에서는 누구라도 놀랄 만 했다.
  2003년 금혼학칙 폐지 이후 우리 학교에는 총 51명의 학생들이 재입학했다. 그중에서 대학원까지 진학한 것은 그가 유일하다. 대학원 공부까지 할 수 있었던 데는 평생 손에서 영어를 놓지 않은 덕이 컸다.
  43년 만에 다시 듣는 수업은 어땠을까? 심리학의 ‘심’자도 가물가물했던 그는 녹음기를 이용해 3시간짜리 강의를 녹음했다. “수업을 한번 듣고 나면 48시간을 컴퓨터 앞에 매달려 워드로 수업 내용을 정리했어. 남들이 세 번 볼 때 열 두 번 본다는 심정으로 공부했거든.”
  심리학과에서는 그에게 도우미 학생을 추천해 주었다. 자신을 도와주는 어린 학생에게 칭찬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A4용지 한가득 필기를 정리해 가져가기도 했다.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으로 만난다고.
  4학년 1학기에는 평균 학점 A+를 맞는 쾌거를 이뤘다. 중국어 수업 기말 레포트로 중국 영화를 보고 한국어로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을 이기고 싶더라고. 그래서 한국어로 써도 되는 레포트를 중국어로 써냈지.” A+학점은 당연한 결과였다.
  학부를 다니는 동안에는 방학 중에 진행하는 영어캠프에도 참여했다. 그는 “45일 동안 어린 룸메이트와 생활하며 레포트를 쓰고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2005년 8월 26일 졸업을 하고 11월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시험을 보았다. 이듬해 3월 정식 입학하기 전까지는 학부 수업을 청강했다.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54학점을 4학기동안 따야 졸업이 가능했다. 보통 대학원 이수 학점이 27학점인 것을 생각하면 두 배 가까이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원 3학기 초에 그는 처음 프레젠테이션을 해봤다. “‘노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모든 내용을 영어로 발표했어.” 기대하지 않았던 유창한 영어 실력에 교수와 학생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다.
  그는 노인 재혼여성의 갈등과 해결 방안에 대한 논문을 썼다. ‘노인학’을 공부한 그에겐 조손가정의 손자녀도 관심 대상이다. 사회복지사로써 자신의 사명은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대학원 4학기에 접어들었을 때 국제대학원에서 있던 유누스 총재의 초청 강연에 갔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제3세계의 빈곤이 심하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갈 곳은 국제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인류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며 “나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의문이 생겼다. 그는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는 틀림없이 다른 노인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어. ‘이런 노인이 있구나,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지.”
  후배들에게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환원하는 자세를 가지기를 당부하는 그에게서 아직 그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9일, 졸업을 마지막으로 이화를 떠나는 그의 인생은 이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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