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많이 벌였죠. 내 장점이자 단점은 하고 싶으면 일단 하고 본다는 것!” 
<Baby>, <Last 5 years>, <Spelling Bee> 학부시절 3개의 뮤지컬의 연출을 맡았던 정한솔(영문·06년졸)씨. 이틀 후 공연할 뮤지컬 ‘스물처럼’을 위해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정씨를 8월13일(수) 목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조그마한 체격이지만 당당한 말투 때문에 힘이 느껴졌다.

이번 무대는 뮤지컬연출가로서 꿈을 이루고자 유학을 떠나는 정 씨를 위한 송별파티다. 그동안 그와 함께한 사람도 50~60명이 넘는다. 동료와의 인연은 2005년 학생문화관에 올린 뮤지컬 <Baby>를 기점으로 이어져 왔다. 이때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우리 학교·방송통신대·홍익대·연세대·숙명여대 등 5개 대학에 공고를 냈고 오디션을 통해 배우 12명, 스태프, 기획팀 등 30여 명의 인원을 꾸려, 지금까지도 프로젝트식으로 모여왔다.

“영문과 선배와 술 마시면서 ‘해보자!’한 것이 여기까지 왔어요” 2004년 겨울 뉴욕에서 영문과 선배 최재희 씨와 12명이 나오는 <Baby> 대본을 목소리도 바꿔가며 읽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영문과 후배들을 모아 번역을 하며 뮤지컬 올리기에 착수했다. 이때 최 씨가 기획을 맡고, 정 씨가 각색부터 연출까지를 담당했다. 

<Baby> 때 알게 된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이화 프론티어 장학금을 신청했고, 이듬해 학문관 소극장에 <Last 5 years>를 올리게 됐다. 이제는 그만하자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었지만 곧 뮤지컬 <Spelling Bee>가 그를 자극했다. “당시 오디 뮤지컬 컴퍼니에 다니던 중 다들 안 되겠다, 버리자고 하는 작품이었어요. 또 일벌이고 싶었죠. 하하" 이번에도 정 씨가 번역·각색을 맡고 가사도 썼다.

정 씨가 처음부터 뮤지컬 연출가를 꿈꿔왔던 것은 아니었다. 5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책 읽고, 글 쓰고 싶어 영문과에 진학했다. “문학에만 빠진다는 건 외로운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뮤지컬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또 말로 풀고, 행위로 풀고, 음악으로 풀고. 춤으로 풀고 이게 정말 매력이 있었죠”

그에게 2004년 5월 <지킬 앤 하이드>의 조연출을 맡으며 데이비드 스완과 함께했던 경험은 연출가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였다. 그는 학부 2학년 NYU 교환학생 기간에 만난 언니의 소개로 뉴욕에서 돌아온 지 이틀 후부터 조연출로 합류할 수 있었다. “백조(스완의 애칭)님은 텍스트 분석력이 좋으신 분이에요. 스토리 텔링에 핵심을 두고 있죠. 연출은 이야기, 행위, 음악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당시에는어렴풋하게 이해했지만 그것이 뮤지컬에 ‘쿡쿡’ 빠져들게 했다고 말했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정 씨에게도 혼란의 시기가 있었다. 어렸을 적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남아공에서 7년을 보냈다. 그는 “남아공에서 살 때는 외국인이었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외국에서 살다 온 애로 비춰지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는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고 자신을 막대하기도 했었다. “쟤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감췄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남에게 맞추기만 했어요. 남들이 봤을 때 어색할지라도, 이제는 남들에게 어떤 상처를 받을까 걱정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싶어요”   

관객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에 신경을 쓰는 정 씨가 감명 깊게 본 뮤지컬은 <맨 오브 라만차>. 그는 이 뮤지컬에 대해 쇼 적인 재미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강한 드라마를 가졌다고 말했다. “짧게 얘기하면 ‘꿈을 놓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라’라는 주제인데 끝을 향해 가는 동안 무대 위의 사람들, 그것을 보는 관객 모두 설득이 되죠” 

그는 어떤 연출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식상한 얘기해도 괜찮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시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요” 뮤지컬 연출과 석사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정한솔 씨.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만발한 해바라기 밭의 돈키호테와 닮았다. 그러나 준비된 그에게서 우리는 불가능한 꿈 대신 열정과 희망을 엿본다.

조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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