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동건이 욕조에 누워 흥얼거린다. “결혼 말 나오면 웃으면 되고~꽃미남 후배 점점 늘어나면 연기로 승부하면 되고~”


SKT 광고의 ‘되고송’과 ‘딴딴따­단딴’(솔미파라솔)하는 징글부터 여러 가수가 각자 다른 버전으로 부르던 ‘레레레레 레모네이드’·SKT와 문화방송의 ‘사람을 향합니다’ 광고의 변주된 ‘Let it be’까지.


단 몇 초 만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광고 뒤편에 김연정(경영·99년졸)씨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김씨의 일은 광고에 들어가는 소리 중 음악과 징글을 만드는 것이다. 흑백의 무성영화같던 광고도 김씨의 음악을 통해 다채로워진다. 대학 재학시절에 학업도 잊은 채 10년 동안 광고음악을 만들어온 그를 압구정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씨는 “음악을 내 일로 삼으리라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다”며 웃었다. 애정과 직업은 별개로 생각했던 것. 그래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동아리 ‘쌍투스’에 가입하면서 인생이 꼬였던 거죠” 김씨가 대학연합합창동아리 ‘쌍투스’ 면접을 보던 그날, 운명의 신이 그를 찾아왔다.


‘쌍투스’의 동아리방은 혜화동 대학로에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 마음이 동하면 그냥 거기로 직행했어요. 한마디로 땡땡이죠!” 왁자지껄한 대학로와 달리, 흰 커튼 쳐진 동아리방에는 붉게 밝혀진 초와 친구들이 있었다. 김씨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떤 친구는 기타를 잡았고 또 다른 친구는 노래를 했다. “낭만적이기만 한 대학생활이었죠”


당시 법학관 3층 중강당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사람이 없는 날 그 피아노는 김씨의 차지였다. 피아노를 치며 창밖으로 흐드러진 꽃도 감상했다. 수업을 들으러 가다가 피아노를 발견하면 피아노 생각만 하기 일쑤였다. 시험이 끝나는 날에도 그는 친구들과 노는 대신,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쳤다.


김씨는 4학년 때 ‘쌍투스’ 공연을 본 광고음악가에게 스카우트 돼 ‘광고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에 점점 재미를 붙였고, 스물 두 살 때 맥도날드의 로고송을 만들었다. 졸업 후에는 광고음악회사 ‘닥터훅(Dr.Hook)’에 입사해 8년 동안 광고음악만 만들었다. 10년간 그의 손에서 대중의 귀로 전달된 음악만도 수십 개지만, 쉴 수 있던 기간은 겨우 한 달이었다. SKT 광고음악은 연대표를 그릴 수 있을 정도고 현대카드·네이버·국민은행 등 굵직굵직한 광고음악을 전부 그가 맡았다.  


어린 나이에 입사한 그는 우리 학교에 대한 선입견에 지기 싫어 악바리가 됐다고 했다. “하이힐·핸드백·프라이드 강한 된장녀…희화화된 고정관념이 싫어서 남자들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몸을 막 던졌죠” 김씨는 평소와는 달리 일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였다.


학창 시절 그에게 음악은 휴식이었다. “피아노 치기를 강요받는 전공생이었다면 오히려 질려서 못했을 거예요” 김씨는 일간지 인터뷰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을 정도로 유명인이 됐다. 유명해진 소감을 묻자 대뜸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이 상태로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 노련해진다는 건 늙는다는 거고, 늙는 건 그 상태로 안주하겠다는 거니까요” 김씨는 ‘고인 물’이 되기 싫다며, 항상 처음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그만의 회사를 차리기 위해 오랫동안 몸담았던 닥터훅(Dr.Hook)에서 퇴사했다.


그의 계획은 두 가지다. 음악에 있어서 저작권과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해 후배 음악가들이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과, ‘김연정 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좋아요. 류이치 사카모토 풍, 알켈리 풍 같은 대명사가 되고 싶은 거니까요”


그동안 만든 수많은 음악들이 자식 같다는 김씨는 인터뷰 내내 음악을 들려줬다.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을 들려주기도 했던 김씨, 광고 안에서 예술을 그려내는 그의 마음은 이미 어엿한 예술가다. 


이채현 기자 cat0125@ewhain.net


☞징글(Jingle)이란?
광고는 소리와 영상으로 분류된다. 이 중 소리 부분에는 로고송과 배경음악이 포함된 ‘음악’·‘쿵!’과 같은 ‘이펙트’·성우의 ‘나레이션’·회사명이나 제품명을 표현하는 ‘앤드’가 있다. 이 ‘앤드’에 음악으로 제품명을 표현하는 ‘징글(Jingle)’이 포함된다. 맥도날드 광고 끝에 붙는 ‘맥도날드!’와, ‘푸르지오~’, ‘선키스트!’, KTF 광고의 ‘해브 어 굿-타임’이 징글의 일종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