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보다는 작품 자체로 평가받았으면 해요"
"장애보다는 작품 자체로 평가받았으면 해요"
  • 이영신 기자
  • 승인 200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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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보다는 작품 자체로 평가받았으면 해요”
한복 디자이너 이나경(서양화과·77년졸)씨의 오른팔 소매 끝은 항상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 14살 설날을 앞두고 방앗간에서 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손으로 한복을 만들지만, 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이씨는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에서 한복전문점 ‘아라가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천을 물들이고 작품을 구상한다. 한복부터 전통미 물씬 풍기는 패션소품까지 모두 한 손으로 만든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팔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 작품은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은 도구일 뿐입니다. 무릎·입 등 오른손을 대신하는 도구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의 작품은 긍정적인 마음을 닮아 더욱 빛난다.

장애로 인한 아픔도 있었다. 대학입시시절 모 대학에 원서를 내러갔다가 팔이 하나 없으면 수학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학교는 오직 ‘이화’뿐이었다. “학교에 나 말고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이 있더라구요. 이화가 장애 차별 철폐에 앞서갔던 거죠” 이화는 그가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 디딤돌 같은 곳이다.

이나경씨가 만든 한복의 가장 큰 특징은 고운 색깔이다. 천연 색이 물든 그의 한복은 벌써 봄이 온 듯 화사하다. 손수 들인 쪽물·감물·홍화물은 화학염색이 만들어낸 색보다 훨씬 곱다. “천연 염색한 천은 채도가 높고 색이 맑습니다. 화학 염색한 천이 곱다한들 천연염색한 천에 비할 바 아니죠.” 남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한복을 만들겠다는 자부심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

“이 천들은 원단시장에 가면 거의 못 찾아요. 원단을 손수 짜거나 공장에 따로 주문하기도해요” 한복 제작은 원단 선정부터 염색·디자인까지 모두 이씨의 손에서 이뤄진다.

그는 제대로 된 색을 내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한다. 명주에 감물을 제대로 들이기 위해 4년을 공들였다. “요즘은 시간도 돈이라고 생각해서 경제적 논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빠르고 손쉬운 것만 추구하다보면 제대로 된게 모두 사라질 거에요”

한복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아라가야처럼 한복을 정성들여 만드는 곳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복을 판매할 때마다 ‘100년 후에 박물관에 걸리거나 진품명품에서 명품으로 판정날 것이니 잘 간수하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한복 디자이너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세 차례의 개인전과 수 차례의 그룹전을 가진 중견화가였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첫 발을 내딛은 것은 78년 오태석의 공연 胎(태)의 무대의상을 담당하면서부터다. 한지로 한복을 만들어 무대의상으로 선보인건 그가 처음이다. 이후 한복은 그의 전부가 됐다.

이씨는 우리 학교에서 ‘자연염색’ 수업을 가르친다. 그는 정규 수업시간보다 빨리 시작하고 늦게 끝낼 정도로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학생들의 열의도 대단하다. “그만큼 해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찌나 열심인지 다른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그는 한복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할 후배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 그 꿈을 위해 한복 아카데미를 설립할 계획이다. “전통 옷을 되살려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는 옷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일을 내 후배와 제자들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학생들이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한복 아카데미엔 초·중·고 아이들을 위한 무료 체험학습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천연염색을 체험해 본 아이들 중 몇몇은 자기 인생에서 큰 꿈을 가지지 않겠어요?” 그의 뭉툭한 왼손이 하얀 천을 쪽빛·홍화빛으로 곱게 물들이듯, 제자들의 가슴에도 천연 무지개빛 꿈이 물들 것이다.

이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