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는 아나운서예요
내 뿌리는 아나운서예요
  • 이대학보
  • 승인 2008.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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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아나운서 서현진 인터뷰

음악의 선율이 몸을 타고 흐른다. 몸의 마디를 따라 소리가 움직인다. 소녀는 음악을 조형하는 ‘몸동작’을 좋아했다. 자신의 손끝과 발끝으로 음악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지금 그는 무대 위에 서있다. 그 무대는 브라운관이다. 이제 춤은 추지 않는다. 그 대신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한다. 바로 MBC 아나운서 서현진(무용학과.03년졸) 선배다.
“주연을 맡고 싶었는데, 한계가 보였어요. 전문 무용수가 되려면 춤을 ‘잘’ 추는 정도로는 부족하거든요. 선택받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의 ‘댄스’ 실력은 인터넷에서 회자될 정도지만, ‘예술’의 세계는 냉정했다.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 친구들도 ‘선택된 소수’는 아니었다. 무용을 계속 할 수도 있었지만, 무대 위의 단역으로 남고 싶진 않았다. 그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후, 방황도 많이 했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러다 춤을 놓아버렸다. 무용수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춤을 전공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1,2학년 때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늦게까지 자다가 일어나보면 강의시간은 훌쩍 넘어있고..... 학교생활이 무료했어요”
삶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 때, 미스코리아 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 나가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대회까지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곧,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춤에 소홀해지면서 몸무게가 6킬로나 늘었기 때문이다. ‘독하게’ 살을 뺐다. 그리고 그 해, ‘미스코리아 선’으로 당선됐다.
그렇게 한차례 인생의 전환점을 돌고 나서야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 일을 찾자’고 생각했다. 졸업까지는 한 학기 남은 상태였다. 무엇 하나 준비해 둔 것이 없었지만, 꿈은 컸다.  “방송 일이 하고 싶었어요. 사실, 방송국 입사 준비하면서 이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더 많이 느꼈어요. 그 때부터 포부를 갖게 됐죠” 마지막 학기만큼은 새로운 꿈을 향해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 때 토익시험을 처음 알았을 정도로, 뭐 하나 갖춘 것이 없었다. 부족한 점은 빨리 인정하고,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자신을 ‘욕심 많고, 떠벌리는 거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사람들에게 ‘떠벌리고’본다. 열심히 할테니, 도와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쪽팔려서라도’ 자신을 채찍질한다.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아예 대거리를 하지 않는다. 그 때는 온 우주에 자신과 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최면을 건다. 다 잘 될 거라고 스스로를 믿는다. 긍정의 힘을 믿는다.
“서울예고 준비할 때도 ‘네가 어떻게’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드러내고, 솔직해져요. 그러면 좋은 기운이 몰려 와요”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느꼈다. “공부도 못하고, 많이 놀았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귀한 재능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복할 수 있어요” 그는 또 그렇게 목표를 이뤘다.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많은 프로그램을 맡았다. 주말 9시 뉴스데스크부터 예능프로그램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라이어티 쇼에 출현한 모습만을 기억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아나테이너’라는 수식어가 자리 잡았다.
“저의 기본 뿌리는 아나운서에요. 아나운서로서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어차피 주어진 일이라면 즐기면서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인지 아나운서로서의 지난 5년은 행복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아나운서는 별로 없었다.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뜻하지 않게 방송의 소모품이 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대본을 받아 보니, 그의 이야기가 꽤 길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사실처럼’ 말해야 했다. 대본에 적힌 대로 읽어야 했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 관련 기사가 실렸다. 안 좋은 기사였다. 인터넷에선 난리가 났다. “반응이 안 좋았어도 후회는 안 해요. 그 일로 절 욕 하는 사람들은 제가 뭘 해도 욕할 사람들이에요.” 그는 감정적인 비난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흘려보냈다.
타고난 낙천주의자.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금 이 상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멋진 삼십대를 준비하는 중이에요” 요즘 그는 영어공부에도 빠져있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송일 이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다. 사진도 배우고 싶다. 언젠가는 나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영향력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어요. 계속 배우고 익히면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치열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하게 자신의 기운을 전했다. 그렇게 세상 깊숙이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

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