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노피곰' 발매한 황병기 교수 인터뷰

 

13년 만에 다섯 번째 작품집 ‘달하 노피곰’을 발매한 황병기 교수(한국음악과)를 찾아 북아현동 자택을 방문했다. 그가 주로 생활하는 2층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거실과 이어지는 서재까지 온통 가야금으로 가득하다. 유리창 밖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가야금 줄이 미세하게 떨려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달하 노피곰’은 백제가요 ‘정읍사’의 첫 구절에서 가져왔다. 백제시대 가요 대부분이 연인이나 부부의 불륜을 노래했는데 반해 정읍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순수함이 백제가요로는 유일하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비결 아니었을까요.” 그는 부부의 간절한 사랑을 백제 사람들은 어떻게 연주했을까 상상에 상상을 거듭했다고 덧붙였다.


다섯 번째 곡 ‘시계탑’은 황병기 교수가 투병하던 중에 탄생했다. 그는 1999년에 대장암으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2주간 큰 수술을 받았다. 링거를 꽂은 채 한밤중 병원 복도를 힘겹게 걷고 있던 어느 날 달빛 비치는 창문 너머로 병원 정원에 있던 하얀 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육체적으로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 황 교수의 머리에 아름다운 선율이 떠올랐다. 황 교수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암흑 속에서 반딧불이 춤추는 환상을 그리며 선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 작품에는 슬픔 중에 환희, 기쁨 중에 괴로움 등 인생의 모순됨이 담겼다.


이번 작품집에 음악기법까지 새로 창작한 곡도 수록됐다. 오후11시에서 새벽 1시의 한밤중을 뜻하는 ‘자시’는 초 현실세계를 표현한 곡이다.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그려내기 위해 대금을 트럼펫 불듯이 혀를 떨기도 하고 목소리를 섞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전통의 소리 국악을 다루는 황 교수이지만 끊임없이 창의적인 시도를 한다. 수십 곡을 발표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황 교수만의 색이 드러날 법도 한데 작품들은 각각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선에서 만족하지 않고 이제까지 내려온 전통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그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에만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1962년에 발표한 작품 ‘숲’에서 처음으로 창작국악 선보였다. 한국음악을 서양 악보에 그리는 방식은 도입했다. 그 당시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전까지 국악은 악보 없이 연주자에 의해서만 전해졌기 때문이다. 황 교수의 시도는 국악을 악보에 남겨 기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창의적인 것에 도전하면서도 옛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그의 예술관이다. “창작과 국악, 둘 사이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지요” 국악은 고루하지만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고, 창의적인 요소들은 새롭지만 기본 틀을 벗어나는 순간 허망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줄타기를 하듯 긴장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야금 줄 위에서 그는 날마다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중용의 미덕을 알기 때문일까. 이런 황 교수만의 독특한 창작 국악은 외국 무대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71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국외 활동이 많은 점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에서 첫 번째 가야금 작품집을 낸 이후로 지금까지 40여 년간 해외공연을 이어왔다. 올여름만 해도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부터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연주 일정들로 쉴 새 없이 바쁘게 보내야 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했지만 그중에서 연주회가 목적이 아니었던 여행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외국 공연 경험이 오래된 만큼 ‘황병기 마니아’ 층은 세계적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팬으로 지난 35년 동안 첫 가을비가 내리는 저녁마다 황 교수의 가야금곡 ‘가을’을 감상한 외국인 부부를 꼽았다. 팬을 자청하는 외국인들로 가득한 세계무대에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마다 황 교수는 한국의 가야금 소리로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가장 한국적인 황 교수의 가야금 연주곡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장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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