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안고 있는 양애진(작곡·4)씨. 가족과 함께 밝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20대 엄마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바울이도 엄마처럼 ‘안녕하세요’ 해야지?”

 

점심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2시. 아이가 유치원에서 수업을 마쳐 함께 왔다는 양애진(작곡·4)씨는 ‘엄마’보다는 ‘누나’가 더 잘 어울릴법한 외모다. 하지만 식당에서 음식 양념이 아이에게 매울까봐 소스를 일일이 닦아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다.

 

“제가 결혼을 빨리 하긴 했죠?” 조금 쑥스러운 듯 이야기를 꺼내는 그는 20살이던 2000년 가을쯤에 4살 연상인 지금의 남편과 만났다. “첫눈에 반하지도, 운명이란 느낌이 온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서 늦게 하더라도 꼭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모님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두 사람은 2001년 4월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친구들의 반대는 없었냐고 묻자 “결혼식 때 와서 축가도 불러줬는걸요”라며 웃는다.

 

그 해 여름 양씨의 뱃속에는 또 다른 가족이 숨 쉬고 있었다. 21살, 그는 대학 새내기의 딱지를 떼자마자 이렇게 풋풋한 새내기 엄마가 됐다.

 

가장 입덧이 심한 1∼3개월 때는 1시간이상 걸리는 거리를 전철로 매일 통학했다. “하루는 지하철에서 내리려 하는데 앞이 깜깜해져 쓰러질 뻔 했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의자에 앉아 쉬면서 집에 가야하나 망설였지만 수업을 듣기위해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학점관리도 더 철저하게 했어요. 과제를 내야 할 때에는 밤을 새며 악착같이 했죠. 교수님께 아기 때문에 편의를 봐달라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더라고요.” 뱃속 아기에게 부끄러운 엄마는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민거리는 따로 있었다. 결혼당시에는 금혼학칙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첫째 아이 출산으로 1년간 휴학한 후 복학했을 때 금혼학칙제가 폐지됐다. “졸업하고 나서야 혼인신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했는데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찍 결혼해 ‘나이’도 문제가 됐다.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는 어린신부여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고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외로웠다. “어디를 가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네요.”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서 든든하다며 미소짓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양애진씨.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대답이 나온다. “실용음악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악도, 어린이들을 위한 뮤지컬이나 만화음악도 제작하고 싶고…” 그의 말에 설렘이 가득하다.

 

“엄마 노릇하랴 전공 공부하랴 1인 다역을 하느라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중한 가족과 함께라서 언제나 행복합니다.” 사랑과 꿈을 가족이라는 품에서 멋지게 키워나가는 양애진씨. 20대 엄마의 파워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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