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어 봤을 것이다.‘어른을 위한 동화’라며 난해한 문장들만 늘어 놓았다는 기억만 갖게 한 그 책을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읽었을 때, 그 난해한 문장들은 반드시 유념해둬야 할 삶의 지침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린 왕자 별에는 한 송이 장미가 살고 있었다. 장미는 어린 왕자의 도움 없인 물을 먹을 수도 영양분을 흡수할 수도 없었으며 세찬 비바람에도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장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은 ‘당연히’ 타인의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도움을 주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어느 날 어린 왕자는 장미를 두고 별을 떠났다. 장미는 비로소 어린 왕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자신은 혼자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장미는 자신의 삶을 원조하는 이들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타인의 도움만 요구하며 주체적인 삶을 설계하지 못하는 존재다.

누가 보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마는 장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대학생인 우리 자신만 보더라도 부모나 형제·자매가 내게 주는 물질적·비 물질적인 ‘원조’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인들이 그들의 삶에 조언이라도 하려 하면 “‘성인’인 내 삶에 왜 간섭하려 하느냐”며 그들의 의견을 거부한다. 엄청난 카드빚에 시달리다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그렇게 살지 말라”는 충고에 자신의 삶에 간섭했다며 부모를 살해한 사건도 이런 실태의 극단적 예다.

나 또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내 삶에 있어 그들의 도움은 인정하지 않은 채 내 삶은 나 혼자의 힘으로 설계 했다는 착각 속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타인의 도움 없이 순전히 내 의지로서 결정된 인생만이 주체적인 삶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을까?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인생은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절대 만들어 질 수 없다. 따라서 주변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 존재 또한 불완전해지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인들의 가치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들이 제공하는 물질적·정신적인 원조를 삶의 토대로 삼은 후에 개인의 노력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주체적 삶·능동적인 삶도 완성되는 것이다.

한 번쯤 내 삶을 되돌아 보자.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자. 길지는 않지만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과연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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