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시절 선배기자들은 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주의를 주곤 했다. ‘OO가 ~했다더라’식의 기사는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독자를 늘리려는 비겁한 ‘수작’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절대 그렇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작’을 부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라도 내 기사를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최근 기성 언론이 그 유혹에 넘어간 듯하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대중을 자극할만한 가십성 꺼리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정부질문에서 벌어진 국회의원들의 막말정치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언론은 공식석상에서 나라일은 뒷전인 채 상스런 말싸움만 하는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대신, 단순히 ‘어느 의원이 이런 욕을 했다’식의 가십성 꺼리로 지면을 채웠다. 여당 의원들이 단체로 한나라당 주모 의원에게 “시끄러워! 당신 아직도 검사야?”라고 소리쳤다는 것으로 시작해, 한나라당 남모 의원이 “너 반말하지마”라고 대응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기사가 연일 보도됐다. 심지어 한 시사주간지는 만화에나 등장할 법한 말 주머니를 이용해 국회의원들의 막말을 ‘중계’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건의 본질이 아닌 자극적인 소재만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염불’ 대신 ‘잿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막말정치 보도를 지켜보는 독자들이 국회의원에 대한 질타를 뒤로 하고 말싸움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스포츠·연예 보도의 경우, 독자는 이미 그 속에 황색 저널리즘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스포츠 신문을 볼 때 그들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기사를 수용한다. 그러나 정치보도의 황색 저널리즘을 예측할 수 있는 독자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의 거사를 논하는 정치보도가 가십꺼리로 다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는 일반인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언론의 입김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제사의 본질은 ‘잿밥’이 아니라 ‘염불’이다. 문제의 핵심은 묵인한 채 가십성 소재로 사람들의 관심만 끌어보려는 황색 저널리즘은 맛있는 ‘잿밥’만 있고 ‘염불’은 없는 제사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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