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침팬지에게 러브레터 바친 학자

“침팬지는 제게 평화와 생명의 순리를 가르쳐 줬습니다”
10일(수) 강연차 우리 학교를 방문한 제인 구달(Jane Goodall)은‘침팬지의 어머니’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침팬지 연구가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가난과 고졸 학력이란 벽을 극복하고 탄자니아의 곰비(Gombe) 지방으로 건너가 46년간 오직 침팬지 하나만을 관찰·연구해왔다. 이번 강연에서 통역·진행을 맡았던 서울대 최재천 교수(생명과학 전공)는 이에 대해 “학계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침팬지를 실험 대상이 아닌 ‘소중한’ 동료로 대해

제인 구달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침팬지를 단지 ‘실험 대상’의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동료’로서 인격적으로 대했다는 점이다. 기존 동물행동학자들이 동물에게 번호를 붙여 관찰하던 것과 달리, 그는 침팬지들에게 플로라·맥그리거 등의 이름을 부여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영장류의 조상인 침팬지가 인간의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실제로 제인 구달은 그레이 비어드(Gray beard, 회색 수염)란 이름을 가진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꺾어 나뭇잎을 떼어낸 뒤 개미굴 속에 집어넣어 흰개미를 사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더불어 그는 침팬지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물론 구성원 간에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침팬지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느끼면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는 반면, 분노할 경우에는 상대 침팬지를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한다. 또한 고아 침팬지를 데려다 키운 청년 침팬지를 통해 침팬지 역시 동정심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이 밖에 침팬지끼리 털을 골라주는 행위가 구성원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평화를 유지시킨다는 점도 제인 구달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일부 학자들의 비난에도 생물학계에 큰 영향 끼쳐

그의 연구 결과를 두고 당시 학계에서는 반박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제인 구달이 침팬지에게 도구 사용을 가르쳐 준 것이 분명하다’며 젊은 여성 과학자의 연구를 폄하하는 과학자들도 더러 있었다. 또 제인 구달은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찾아간 케임브리지대학 관계자들로부터 연구자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던 기존의 과학 연구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보수적인 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제인 구달의 연구가 동물행동학은 물론 영장류학·인류학에 큰 영향을 끼친 공로를 인정한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한국교원대 박시룡 교수(생물교육학 전공)는 “제인 구달의 연구는 연구자의 감정을 관찰 과정에 반영시켜 기존의 연구 방법에서 문제시됐던 자연과의 괴리감을 해소했다”고 전했다. 이번 강연에서 제인 구달은 “연구 도중 폭포수 아래서 20분 동안 춤을 추던 침팬지에게서 자연과 동물 사이의 교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침팬지 연구 통해 환경운동에 앞장서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전세계 침팬지 전문가들이 모인 학술회의에 참여하는 등 침팬지 연구에 힘을 쏟던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서식지 파괴·동물학대 등을 목격한 뒤 환경운동에 참여해 왔다. 이는 침팬지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침팬지의 보호가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991년‘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운동은 ‘뿌리와 새싹이 힘을 모으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뜻 아래 회원이 스스로 즐겨하는 일을 하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현재 87개국에서 약 7500개의 모임들이 학교 뒷마당에 꽃·나무 심기, 지역에 버려진 애완동물 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연에서 제인 구달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국이 ‘뿌리와 새싹’ 운동에 참여하는 88번째 나라가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제인 구달의 저서 「희망의 이유」를 번역한 서울대 박순영 교수(인류학 전공)는 “그의 연구는 환경운동에 큰 파급력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현재 그는 7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를 순회하며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강연을 들은 신지현(생명과학·3)씨는 “제인 구달은 오염돼 가는 자연 환경이 우리 대학생들의 힘과 자연의 회생력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재천 교수는 “‘머리로는 객관적인 연구를 하고 가슴으로는 연구 대상을 느낀다’는 말처럼 제인 구달은 연구를 통해 자연이 주는 희망을 세계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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