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눈 감고 지나가자고 그렇게 다짐해놓고도 또 속에서는 불끈불끈 화가 치민다. 욕이나 먹고 명수나 더 늘리는, 그야말로 소득없는 짓을 또 하자니 이보다 더 바보 같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이를 한번 앙다무는 수밖에. 늘 겪어왔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한순간 침울해지는 것은 나 자신조차도 어쩔 수 없다.
학보사에 들어온 뒤 비난을 받는 일에 익숙해지긴 했다. 내가 이화인을 향해 쓴소리를 뱉으면 난 그들의 적이 됐고, 학교를 비판하면 권위에 도전하는 꼴이 되었으니. 그래서 나는 제3자가 쏘아보는 비난의 눈초리에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으론 진정한 비판에는 내 귀를 거침없이 내어놓으려고 기를 썼다. 분노한다고 해서 내가 감정적으로 사사로이 울분을 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도 모자라 끝없이 자기 검열을 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이 되면 또 기사를 썼다. 설령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게 되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다져진 토양 위에서 상처로 흘린 눈물을 마시며 잡초로 품종개량 됐다. 더이상 내 감정에 나조차 충실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감정을 차단하는 단단한 보호막을 입어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내겐 학보사에 들어오기 전, 온실 속의 화초였던 기억이 남아있다. 매년 30여명의 ‘독한 년들’을 만들어 내는 학보사. 선배들은 항상 퇴임 무렵에 “맨 손으로 사자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해져서 나간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난 아직 그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해야 하는 기자의 의무가 때로는 버겁다. 흔히 자신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비판을 꺼리게 한다. 내편 아니면 적으로 가르는 사람들에겐 내가 뱉은 쓴소리 한 마디는 일종의 경고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이 글로 표현됐을 경우 그 적대감은 더 커진다. 행간의 의미를 파고들다 보면 논의는 어느새 본질을 잃게 마련이니까. 그러다가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이화인’으로 구성된 기자라는 사실을 잊는다.
부장으로 학보사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지금, 이제 난 이화인이라는 소속감보다는 변방인이라는 소외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리적인 비판의 장에서 발전상을 함께 논의하는 것에는 언제든지 마음의 긴장을 풀 준비가 돼 있다.
이번 학기 초에도 난 굳은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나면 지나간 세 학기가 그랬듯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돼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숨을 고르며 나에게 주문을 건다. ‘마지막까지 취재노트에 쓴소리를 휘갈기자, 이것이 독침이 될지 약이 될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라고.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그 말을 꼭 하고 싶어 했던 누군가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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