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말 개인 신용불량자가 380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의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용불량상태에 있는 셈이니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떠한 지 짐작이 간다.

이와 같은 신용불량자의 증가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조건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남의 돈을 빌려 쓴 당사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치거나 오히려 음성적으로 조장해 온 정부의 책임도 적지는 않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는 소비 촉진 정책을 위해 신용카드를 지원했고 경제 능력이 없는 젊은이들까지도 신용카드를 지니게 됐다.

그러나 경제 능력이 없고 무책임한 젊은이들에게도 무조건 카드를 발행해줘 소비를 조장한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사실상 이는 신용불량자의 증가를 묵인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현재 신용불량자들의 부채 중 50%가 신용카드부채인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신용사회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신용사회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책임과 의무를 철저히 질 수 있도록 체계적·합리적인 통제 시스템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

이처럼 총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부채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배드뱅크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40만 명 가량의 신용불량자를 구제해 준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많은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될 때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던 정부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왜 그와 같은 ‘기적의 카드’를 꺼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고의로 돈을 갚지 않던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배드뱅크의 정착이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 그리고 그 많은 액수를 탕감해준다면 그 짐이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말하고 있다.

부디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이번 정책을 투명하고 공평하게 처리해 성실한 사람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바란다.

그릇된 목적으로 급조한 대책은 결코 국민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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