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학보사 8기 기자 소설가 김정례씨

피천득 선생의 ‘인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의 상짱으로 남아있던 아사코의 얼굴이 한 TV프로그램에 공개되던 날 아침 남편은 화를 냈다. 이런 고얀 놈들이 있나! 남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상품화시키다니!

하긴 책갈피 속에서 납작해진 색 바랜 꽃잎이나 네 잎 클로버는 자칫 꺼내들기도 전에 허망하게 부서져버리기 십상이다. 오랜 기억들 속에서 하나를 수면 밖으로 떠올리면 어느 새 색깔은 변해있고 의식 안에서만큼 영롱하지 못한 것처럼. 오늘 나는 마음먹고 가라앉았던 숱한 기억들 중에서 상큼한 기억들만 건져 올려보려고 애를 쓴다.

이대학보사. 이곳은 가난한 내게 학비를 보태줬고 너무 행복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랑도 알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의식의 첨단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길러줬다. 그런 학보사에서 우리들은 늘 기사의 제목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곤 했다. 어느 해 모 일간지 사회면에 혀가 잘린 청년 이야기가 실렸다. 싫다는 동네 처녀에게 강제로 키스하다가 혀를 깨물렸고 끊어지기까지 했단다. 청년은 끊긴 혀 조각을 주워 들고 삼십 리 길을 달려 읍내 병원까지 왔다고 기사는 전했다. 그 날, 우리라면 이 기사의 제목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그 기사의 진짜 제목은 정작 생각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설왕설래(舌往舌來)하다 혀 잘려’하면 어떨까” 하던 지금의 한국일보 사장인 장명수씨의 의견에, 누군가 “설왕은 분명하지만 설래는 없었다. 설래가 있었다면 애초 이 사건은 일어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고 반박해 박장대소했던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키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생한 기억이 있다. 이대학보사와 서울대 대학신문사가 공동 주최로 팝가수를 초청한 적이 있는데,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앨 알버트라는 이름의 그리 크지 않은 서양 남자였다. 공연이 열린 대강당은 빈틈없이 사람들로 가득찼고 관객의 열기와 가수의 열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편집국장 언니의 엄명으로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나간 나는 정작 노래를 부르는 알버트보다 더 떨고 있었다. 눈부신 조명과 무대 아래서 빛나던 수천의 눈동자들. 나는 허청허청 걸어나가 그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꽃을 받아 안으면서 그 남자가 달콤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내게 인사를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알버트가 “May I kiss her?”라고 묻는 소리를 꿈결처럼 들은 것 같았다. 그것이 무슨 뜻인 줄을 겨우 알아차렸을 때쯤 뜻밖에도 내 볼 위로 얼음처럼 차갑고 꽃잎처럼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내려 앉았다.

어마뜩한 나는 한 달음에 무대 뒤로 도망쳐 나왔다. 등 뒤에서 강당이 터져 나갈 듯이 요란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미처 상황 판단을 하기도 전에 내 뒤에 섰던 밴드 마스터 김순영씨가 마음대로 고개를 끄덕여준 까닭에 나는 내가 사랑하던 남자 앞에서 엉뚱한 외간 남자의 첫 입맞춤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피천득 선생처럼 덕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누가 알버트의 소식을 수소문해줄 것이며 관객석에 앉아서 파안대소를 한 ‘내가 사랑했던 그 남자’를 찾아줄 것인가. 꿈깨고 늙은 내 남편에게 보이차나 한 잔 같이 마시지 않겠냐고 물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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