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성운동을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그러면, 넌 페미니스트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나는 여성주의자다.

”라고 대답했을 때 돌아오는 시선엔 지지와 격려보다는 거부감과 편견이 담겨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페미니스트란 사소한 것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여성운동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이화인들을 접할 때가 있었고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 또한 ‘너무 극단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를 거부한다는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을 극단이라 일컫는지 묻고 싶다.

혹, 급진의 개념과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반적으로 ‘극단’이란 현실은 무시한 채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 어떠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를 뜻한다.

따라서 ‘극단’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한편 ‘급진’은 목적이나 이상 따위를 급히 실현하고자 변혁을 서두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개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극단주의는 어떠한 비판에도 꿈쩍하지 않고 홀로 잘못된 방향을 향해 내딛지만 급진주의는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상황, 즉 그들이 주장하는 목적과 이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나 사회의 통념에 비해 진보적인 입장을 무조건 극단이라 단정지은 것은 아닌지 한번 고민해 볼 일이다.

또한 급진, 진보 등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운동의 색깔을 규정짓기 보다는 그 운동이 과연 현실과 맞물려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느냐에 더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급진적 여성주의자’이길 원한다.

불편하기 때문에, 불편해 분노를 느끼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을 계속 해 나갈 것이고 극단으로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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