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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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삭감으로 월급이 확 줄어 등록금도 안 나올 정도예요.” (ㄱ씨)

 

우리대학 이공계 대학원을 졸업한 ㄱ(24년졸)씨가 다니던 연구실은 5년짜리 장기 과제를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 R&D 삭감으로 장기 과제 이후 계획한 후속 과제가 중단되자 ㄱ씨의 월급은 100만 원 초반에서 40만 원대로 크게 줄었다. 연구비 및 인건비 확보를 위해 새로운 과제에 2023년 말부터 다수 지원했지만, 결국 과제가 선정되지 않아 예산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ㄱ씨는 “월급이 반토막 나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학부 수업 조교를 하며 등록금을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 신입생들도 제대로 된 인건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ㄱ씨는 “(우리 연구실의) 연구 분야가 특수해 타대 학생들도 컨택을 해오는데 예산 부족으로 교수님이 많이 거절했다”며 “어렵게 들어온 신입생마저도 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대학원에 3학기째 재학 중인 ㄴ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ㄴ씨는 “우리 실험실도 과제 1개의 예산이 삭감됐다”며 “예산 삭감으로 실험을 위한 화학약품 같은 소모품을 사는 비용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에게 주어지는 연구비 안에는 인건비, 재료비, 운영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ㄴ씨는 “연구비가 줄어들면 필수적인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 학생에게 주어지는 부가적인 비용부터 줄이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2024년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대학원생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연구비가 대폭 줄어들며 대학원생들의 월급이 본격적으로 삭감되기 시작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사업별 예산 삭감률을 적용했을 때 우리대학의 연구비 예산이 2022년 대비 약 5.4% 삭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자료는 2022년 우리대학에서 수행한 모든 국가 R&D 과제정보(보안 과제 제외)를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서 수집해 추산한 자료다. 2022년 우리대학 국가 R&D 연구비는 약 957억 원이었으므로 2024년엔 약 51억6780만 원이 삭감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이준영 수석부지부장은 “대학은 국가연구개발사업비의 24%가 집행될 뿐 아니라 가장 많은 연구 책임자가 소속된 기관”이라며 “예산 삭감으로 국내 대학은 약 6% 이상의 연구비인 약 3300억 원이 삭감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피해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은 R&D 삭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ㄱ씨는 “연구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좁다 보니 서로 다 알 수밖에 없다”며 “교수님들조차도 이런 제한적인 환경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예산 삭감은 대학원생의 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연구 환경 전반에 악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기초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대학 ㄷ교수는 기초연구 분야의 예산 감액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ㄷ교수는 “기초연구의 경우 과학 분야의 근간을 지탱하는 사업”인데 “관련 연구 사업들이 일괄 10% 삭감돼 대학원생 지원과 연구 활동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연구비의 삭감은 학문 분야 간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고 특정 유행하는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돼 연구 다양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이 수석부지부장은 “대학이 수행하는 R&D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R&D 예산 삭감이 대학에 미칠 영향은 클 것”이라며 “이는 대학원생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고, 연구자로 성장하게 하는 데 큰 장애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산 삭감에 대해 우리대학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응책은 무엇일까.  ㄷ교수는 각 연구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행정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ㄷ교수는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충분한 연구 공간을 제공하고, 늦은 밤까지 실험을 수행하는 대학원생을 위한 수면실 및 샤워실 마련, 대학원생 기숙사 우선 배정 등 학교 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산학협력단(산단)은 대학원생의 피해를 다각도로 모니터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입장이다. 산단 이준성 단장은 “학생 연구원들의 인건비 지급을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 다각적인 제도 개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산학협력 과제의 경우 연구비가 모두 입금되기 전이라도 학생연구원들의 인건비를 미리 지급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단 규정을 개정했으며, 이화 프론티어 10-10 사업 예산 중 대학원생 인건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유연한 예산편성을 허용하고 대학원생 인건비 지원을 용이하게 했다”고 말했다.

 

R&D 예산 삭감

R&D는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을 뜻한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의 기초연구, 응용연구, 실험개발을 지원하는 R&D 예산을 매년 늘려왔다. 실제로 R&D 예산은 2018년 약 19조7000억 원, 2022년 약 29조8000억 원, 2023년 약 31조1000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2024년 정부 예산안에서 정부는 연구개발비(R&D) 예산을 2023년보다 16.6%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33년만의 감축이다. 이로 인해 특히 과학계를 중심으로 연구실 운영과 과제 진행 어려움으로 인한 연구 경쟁력 약화, 연구진에 대한 처우 및 일자리 감소 등의 우려가 있었다. 우려에 따라 R&D 예산은 다시 늘어 26조5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 취재원 신원이 공개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 일부 취재원을 불가피하게 익 명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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