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양선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전 중앙일보 대기자. 본교 교육학과를 1987년 졸업하 고 동대학원 석사, 서울대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32년간 기자로 일하며 온 라인 편집국장, 논설위원, 콘텐트랩 실장 등을 역임했 다. 2011년 단편소설 ‘흘러간 지주’로 등단해 소설가 로도 활동하며 『이대 나온 여자』, 『적우: 한비자와 진시 황』, 『카페 만우절』, 『여류 삼국지』 등 작품 다수를 썼다. 2022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로 일한다.

 

“교회엔 성인과 함께 가고, 술집엔 술꾼과 간댔는데, 지옥에서 마귀들과 함께 다니는 게 뭐 어떠냐.” 검은 역청에 죄인을 삶는 ‘탐관오리의 지옥’에서 길을 잃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마귀 10인대를 앞세우고 지옥 여행을 하게 된다. 이쯤 되자 단테가 체념하듯 뱉어낸 말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도 가장 웃기는 코미디 장면. 누구나 이 대목에 이르면 까르르 웃게 된다. 이 책은 심란했던 시절 늘 함께한 친구였다. 출퇴근 길에 음악 듣듯이 전자책 읽어주기 버전을 들으면서 다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독서는 좀 박정한 구석이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에 내 손에 책이 들려있던 기억은 없으니 말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돌이켜 보면, 늘 그 시절에 읽었던 책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은 책만 남고, 그 순간은 잊었다. 어쩌면 그게 책의 힘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삶의 기준이 있지만, 악다구니 같은 현실에 휘둘리다 보면 갈피를 잃을 때가 있다. 각성하지 않으면 잊히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고지식하다. 내 생각이 널을 뛰어도 책은 널뛰지 않는다. 삶이 어려울수록 내 중심을 잡아 버티게 하는 책의 존재는 그래서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신문기자 시절, 내 책상 위 독서대엔 10년 가까이 『한비자』가 펼쳐져 있었다. 다른 책도 읽었지만, 『한비자』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어야 안심이 됐다. 이렇게 내 인생의 고비엔 언제나 중심을 잡아주는 책이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게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내가 그대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책을 추천하겠어요.”

물론 요즘은 독서도 ‘덕질’하듯 하는 걸 안다. TV 드라마에 비췄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책 소개 프로그램이 마케팅 소스가 되고, 셀럽들은 앞다퉈 책을 추천하고…. 족집게과외처럼 내용을 쏙쏙 뽑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도 흔하다. 마음만 먹으면 ‘패키지투어’하듯 독서 투어가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독서의 허망함도 안다. 각종 조찬 강연회에 부지런히 다니고, 독서 프로그램 열혈 시청자인, ‘책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안다. 그는 온갖 책들을 인용해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하고, 해설을 하는데…. 들을수록 ‘신기’했다. 딱히 틀렸다곤 할 수 없는데, 어색하고 종잡을 수가 없다. 마치 고무신을 신고 턱시도를 입고 갓을 쓴 모습? 내가 ‘조찬강연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이런 비주체적 독서인들은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도 책은 힘일까. 듣는 사람마저 헷갈리고 불안정하게 하는, 그 넘치는 지식이 본인에게는 혼란의 근원이 되진 않을까.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쓸데없는 말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좋은 책도 있고, 나쁜 책도 있다. 힘이 되는 책도, 힘을 빼는 책도 있다. 책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가 있다. 책이 수없이 많은 것도 각자에게 다른 책들이 필요하기 때문일 거다. ‘나의 책’을 찾는 것도 인생의 한 과정이고, 각자 인생의 품질도 그런 능력과 안목의 범위에서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독서에 관여하지 않았다.

대반전. 요즘 ‘독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독서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져서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깨달은 것도 있다. 사람마다 문해력에 차이가 있고, 독서 방법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서법을 몰라서 못 읽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학생들에게 책을 고르는 법이나 독서법을 슬쩍 가르쳤는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걸 보며 ‘남의 독서에 관여하는 일’의 의미도 나름 찾게 됐다.

요즘은 내 연배의 여성들과 몇 개의 ‘낭독독서모임’을 한다. 책을 정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는 것이다. 내 독서법은 언제나 완독이다. 이를 위해 『신곡』의 지옥 편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각색했고, 내 글쓰기 재능을 활용해 함께 읽는 데 좋은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건강하게 늙어가는 준비의 하나였다.

‘고령기의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네 가지를 해야 한단다. ▲지적인 상상 ▲즐거운 대화 ▲사회적 관계 ▲걷기. 낭독모임은 이 네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활동이고, 우리보다 앞선 초고령사회 유럽에서도 활성화돼 있단다. 그래서 시작한 것인데, 지금은 친구들과 ‘낭독극단’도 만들고, 공연도 다닌다.

독서도 인생 주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좋은 길로 이끈다. 어려서는 세상에 눈을 뜨게 했고, 젊어서는 힘든 삶을 버티게 했고, 이제 늘그막에는 즐겁게 해주니 말이다.

양선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