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화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교원 20명이 2월29일을 끝으로 퇴임했다. 학부에서는 ▲사회과학대학 2명▲공과대학 1명▲조형예술대학 1명▲사범대학 5명▲신산업융합대학 1명▲의과대학 4명이 퇴임했다. 대학원에서는 ▲국제학과 2명▲언어병리학과 1명▲약학과 1명▲법학과 2명이 교정을 떠났다. 퇴임 교원 3명을 만나 그들이 이화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담았다.

 

김정효 교수(초등교육과)

김정효 교수는 히브리어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문구가 적힌 교육관 앞을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변하영 사진기자
김정효 교수는 히브리어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문구가 적힌 교육관 앞을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변하영 사진기자

“초등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정해진 사회 규범을 가르치는 게 자신 없었고, 동화 작가를 꿈꾸며 들어간 출판사에서도 보람을 찾지 못해 갈등했어요. 이런 방황을 잠재워준 곳이 이화였죠.”

김정효 교수는 고3 시절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우리대학 초등교육과 77학번으로 입학했다. 과 대표도 하고 <이대학보> 신춘문예 문학상도 수상하며 활발한 대학 시절을 보냈으나 초등 교사를 꿈꾸지는 않았다. 김 교수가 어린 시절 생각했던 초등교사는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가르치는 고리타분한 직업이었다. 그렇게 그는 초등 교사 대신 동화 작가의 길을 택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도 1년 반 동안 일했지만, 그는 회사의 이윤만을 위해 일하는 삶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고 퇴사했다. 이화에서의 29년 교수 생활을 뒤로한 채 퇴임하는 그도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앞날을 고민하던 20대 청춘이었다.

그는 출판사 퇴직 후 어느 곳도 맞지 않는 자신을 보며 방황했다. 김 교수는 학부생 시절 듣던 채플 속 “누군가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시다”는 말을 떠올리고 대학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앙의 도움으로 마음 정리가 된 김 교수는 학부 시절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도봉구의 한 사립초등학교 5학년 담임으로 부임해 3년간 지냈다. 교육 현장에서는 그동안 책으로는 배울 수 없었던 문제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한 1대1 수업 방식은 한 반에 50명이 넘었던 80년대의 교실에 결코 적용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자 김 교수는 교육학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9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는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정효 교수. 변하영 사진기자
29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는 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정효 교수. 변하영 사진기자

유학길에서 돌아와 우리대학에 부임한 김 교수는 신앙과 유학에서 공부한 학문의 통합 연구를 시작했다. 8년간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이대부초) 교장을 지내며. 신앙을 기반으로 한 인성 교육을 위해 힘썼다.

“늘 버겁게 달려왔죠.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어요.”

29년간 초등교육과 교수로서, 그중 8년간은 이대부초 교장으로 일한 김 교수는 그야말로 공백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김 교수 마음 한편에는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 꼭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많았다”며 “(그들에게) 주저만 하다 끝내 먼저 손을 내밀진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 정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하나님께 고마워요.

▲1995년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부임

▲우리대학 사회공헌교수회 회장/이대부초 교장, 국가인성교육위원회 위원, ACSI(국제기독학교연맹) 한국이사, 기독교학문연구회 교육분과장, 한국초등교육학회장 역임

 

최병일 교수(국제학과)

최병일 교수는 “퇴임 이후에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최병일 교수는 “퇴임 이후에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나는 유별난 교수였어요. 대학원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 오는 곳인 만큼 내 모든 걸 불살라서 학생들에게 국제학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죠.”

최병일 교수는 27년간 우리대학 국제대학원의 설립과 부흥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그는 여러 국제기구 현장에서 일하며 조명받지 못하는 유능한 한국 여성 인력들을 만났다. 더 많은 여성을 글로벌 인재로 기르고 싶다는 소명을 품고 우리대학에 신설된 국제대학원에 오게 됐다.

최 교수는 그간 만난 이화인들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최 교수가 마련한 토론식 수업을 통해 외부 토론 대회에 나선 학생들은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후 그에게는 ‘히딩크’, ‘우승 청부업자’와 같은 남다른 별명이 따라붙기도 했다. 최 교수를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은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토론식 수업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여러분은 지금 꿈꾸는 직업이 왜 하고 싶은지 대답할 수 있습니까?”

최 교수는 정든 이화를 떠나며 학교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교수로 일한 지 얼마 안 됐던 2000년대 초, 국제대학원생 대부분은 미국 로펌 변호사를 희망했다. 당시 그가 학생들에게 “왜 미국에 가서 변호사 일을 하려고 하냐”고 물었을 때 그 이유를 명확히 답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그저 주변 친구들이 꿈꾸는 것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본인이 집필한 책들 중 ‘혼돈의 시대, 명쾌한 이코노믹스’를 설명하고 있는 최병일 교수의 모습. 변하영 사진기자
본인이 집필한 책들 중 ‘혼돈의 시대, 명쾌한 이코노믹스’를 설명하고 있는 최병일 교수의 모습. 변하영 사진기자

그는 우리대학 정문에 걸린 여러 축하 현수막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임용고시 수석 합격,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수석 합격 등 각 분야 고시의 1등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보며 최 교수는 이를 “기성세대의 문법에 학생들을 가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모든 학생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학교가 정작 자랑스럽게 여기는 직업은 너무나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직업이 아니어도 자신이 행복한 일이라면 주저 말고 도전하라는 뜻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죠.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잘하게끔 만들어보세요.

▲1997년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부임

▲우리대학 국제학부장, 국제대학원장, 국제통상협력연구소장/외교통상 정책자문위원, 한국경제연구권 원장, 한국협상학회장,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역임

 

김용표 교수(화학신소재공학전공)

인터뷰를 마친 후의 김용표 교수. 컴퓨터 모니터에서 김용표 교수의 연구 내용을 담은 PPT 슬라이드를 볼 수 있다. 강연수 사진기자
인터뷰를 마친 후의 김용표 교수. 컴퓨터 모니터에서 김용표 교수의 연구 내용을 담은 PPT 슬라이드를 볼 수 있다. 강연수 사진기자

“무엇이든 계속하다 보면 재밌어집니다. 대기환경을 계속 연구하다 보니 재밌어졌고, 그렇게 교수가 됐죠.”

24년간 우리대학에 몸담은 김용표 교수는 교직 생활을 “어쩌다 보니 된 일”이라고 표현했다. 쉼 없이 교수자로서 살아오다 퇴임했음에도, 그는 3월부터 우리대학 환경블라인드스팟연구센터에서 시행되는 연구를 맡아 1년간 연구교수로 일한다. 김 교수는 “이 모든 일에 큰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 적성 검사에서 늘 인문사회계열이 나올 정도로 문과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남자는 공대를 나와 공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공대에 가게 됐다. “이 분야가 좋아서 오래 공부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재밌어졌어요.” 하나를 알면 또 다른 궁금증이 가지를 치고, 끊임없이 생기는 의문을 해소하는 게 즐거웠다.

그는 학생들이 성장해 졸업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얻었다. 학교는 학생을 교육하는 곳인 만큼 강의, 동아리 활동, 연구 등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게 ‘교육’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24년간 김 교수의 강의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는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강의’를 하게 됐다. “교수보다 학생들의 정보 탐색 능력이 더 뛰어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젠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이 지식이 왜 필요한지, 이 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중인 김용표 교수. 그는 “공부라는 행위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강연수 사진기자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중인 김용표 교수. 그는 “공부라는 행위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강연수 사진기자

“여러분 세대는 어찌 됐든 굶어 죽지 않을 사회니까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세요.” 김 교수는 “우리 세대는 가난하고 정보도 없었지만 성장하는 사회였고, 여러분 세대는 풍족하지만 정체된 사회”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청년들이 진로와 취업에 대해 많은 불안을 갖고 있지만, 예전처럼 생계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되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는 “지금 학생들은 선택의 기회가 너무 많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며 앞날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보라”고 말했다. 한 가지를 계속하다 보면 그 일을 잘하게 되고, 흥미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실패한다고 해서 학교에서 여러분을 쫓아내지 않아요. 실수하고 실패하고, 경험할 수 있는 건 대학 때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2000년 과학기술대학원 환경학과 부임

▲우리대학 대학원장, 산학협력단장, 연구처장/한국입자에어로졸학회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및 한국환경한림원 회원 역임

 


이인표 교수(국제학과) 

▲1997년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부임

▲우리대학 입학처 부처장, 교무처장, 스크랜튼대학장, 국제대학원장, 국제지역 연구소장/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역임

 

석인선 교수(법학과)

▲1998년 법과대학 법학과 부임

▲우리대학 학생처장, 젠더법학연구소장/헌법재판소 헌법연구위원, 헌법재판연구원 원장, 재단법인 한국여성재단 감사,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 역임

 

신승남 교수(법학과)

▲2005년 법과대학 법학과 부임

▲한국중재학회장,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역임

 

최은봉 교수(정치외교학과)

▲ 2001년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부임

▲ 우리대학 사회과학대학장, 정책과학대학원장, 재무처장, 입학처부처장, 이화사회과학원장/현대일본학학회 회장, 한국사회역사학회 회장,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양윤 교수(심리학과)

▲ 1995년 사회과학대학 심리학과 부임

▲ 우리대학 교육심리학과 학과장/한국소비자광고심리학회장, (사)한국심리학과 수석 부회장 역임

▲ 한국형 대학 공개 강좌(KOCW) 인기 강의 <심리학의이해> 강의로 한국 심리학 대중화에 기여, 교육부장관 표창 수훈

 

정혜진 교수(조형예술학부)

▲ 2016년 조형예술대학 동양화전공 부임

▲ <Designing with korean paintings>, <드로잉의기초와응용> 강의 개발. 회화, 판화, 설치 작업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 중

 

황규호 교수(교육학과)

▲ 1995년 사범대학 교육학과 부임

▲ 우리대학 입학처, 교무처장, 교육대학원장, 사범대학장 역임/국가교육과정 개정 연구 참여

 

한유경 교수(교육학과)

▲ 2004년 사범대학 교육학과 부임

▲ 우리대학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교육대학원교학부장, 기획처부처장, 대학원장/한국교육개발 연구위원 역임

 

박승희 교수(특수교육과)

▲ 1992년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부임

▲ <장애와사회> 통해 국내 대학 최초 ‘장애학’ 소개, 한국특수교육학회 회장 역임

 

우애자 교수(과학교육과)

▲ 1993년 사범대학 과학교육과 부임

▲ 한국자기공명학회 간사, 교과교육연구소장 역임

 

심현섭 교수(언어병리학과)[대학원]

▲ 1999년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부임

▲ 우리대학 언어병리학과장, 이대부고 교장, 발달장애아동센터소장, 교육대학원 교학부장/한국언어청각임상학회 회장, 한국언어치료학과협의회 회장 역임

 

박영일 교수(융합콘텐츠학과)

▲2007년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부임

▲우리대학 교육혁신단장, 융합의학연구원장, 대외부총장/과학기술부 차관 역임

 

장중현 교수(의학과)

▲1995년 의과대학 의학과 부임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고시이사 역임, 2014년 결핵관리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

 

김경효 교수(의학과)

▲1993년 의과대학 의학과 부임

▲우리대학 의과대학 임상교무부장, 의과대학장, 의학전문대학원장/대한소아감염학회 회장, WHO SAGE 자문위원, WHO 국가홍역풍진퇴치위원장 역임

 

백희정 교수(의학과)

▲2000년 의과대학 의학과 부임

▲우리대학 의학전문대학원 및 의과대학 입학관리부장, 자체평가위원회 총괄위원장,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주임교수 역임

 

이홍수 교수(의학과)

▲1993년 의과대학 의학과 부임

▲우리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 부원장, 이대목동병원 교육연구부장/대한가정의학회 기획이사, 대한임상노인의학회 이사장 역임

 

이경림 교수(약학과)[대학원]

▲1995년 대학원 약학대학 약학과 부임

▲우리대학 약학대학장, 임상보건과학대학원장, PHC센터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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