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비(R&D) 예산을 2023년보다 16.6% 삭감했다. 인문사회 분야지원은 더 미약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4년제 대학의 공학 분야가 연구비로 약 36조 원을 지원받은 반면 인문학 분야는 약 1조원을 지원받았다. 인문학 연구의 위기 속, 인문학 기반의 융복합 연구 공간으로 국내 포스트 휴먼 담론을 이끄는 이화인문과학원의 오윤호 교수, 신상규 교수를 만나봤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과학기술을 통해 지능, 신체 능력, 수명 등이 향상된 인간 혹은 근대적 인간 중심의 인간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을 의미한다.

 

오윤호 교수가 에코 테크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FINCH’(2021)를 추천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오윤호 교수가 에코 테크네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FINCH’(2021)를 추천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과거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고, 현실의 상상력은 미래가 됩니다.

시간 여행, 행성 사이를 넘나드는 우주여행, 인간을 위협하는 기계 인간. 많은 사람이 과학 소설(사이언스 픽션, SF)을 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공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오윤호 교수(이화인문과학원⋅호크마교양대학)는 “SF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SF에서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오윤호 교수를 만나 <사이언스픽션의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 교수의 <사이언스픽션의이해>는 SF를 당대 사람들의 과학적 인식을 보여주는 창구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로서 새롭게 살펴보는 강의다. 단테의 ‘신곡’부터 영화 ‘핀치’(2021)까지 오 교수가 선정한 약10개의 SF 작품을 바탕으로 유토피아, 에코테크네, 기계와 감정, 포스트 휴먼 4개의 핵심 주제를 논의한다.

 

세상에 대한 이해, SF

SF는 문학적인 상상력에 과학 지식을 결합한 하나의 문학 장르다. 오 교수는 더욱 폭넓게 SF를 현실 세계를 반영하며 미래에 대한 상상이 담긴 모든 작품이라고 본다. <사이언스픽션의이해>에서는 흔히 떠올리는 근대 문학으로서의 SF보다 더 넓은 범위의 작품을 포함한다. 수업은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부터 소설 ‘멋진 신세계’(1932), 영화 ‘트랜센던스’(2014), 영화 ‘스위트 투스’(2021)까지 다룬다.

‘유토피아’는 보통 SF소설로 분류되지 않지만 <사이언스픽션의이해>에서 다뤄진다. 오 교수는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상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영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작품이다. 토마스 모어는 산업혁명에 따른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고민하며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상적인 섬,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오 교수는 “근대 국가가 출발하려는 시점에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 정치 및 경제의 문제를 들여다봤고, 유토피아라는 상상을 통해 미래를 고민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SF 작품”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사고실험’

오 교수가 말하는 SF는 단지 현재에 대한 이해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인간보다 한발 먼저 다가올 미래를 고민하고 거기에 답하는 것이 SF다.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을 통한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사고 실험을 하는 것이 지금의 SF에 걸맞은 정의가 아닐까 생각해요.” 오 교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이카로스’를 예로 들었다. 크레타섬의 미궁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 이카로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된다. 오 교수는 “하늘을 나는 이카로스의 꿈은 실패했지만 우리 시대 인간이 현실화했다”고 말한다. “과거의 허구적 상상력이 우리 시대에는 현실이 되는 거죠.”

<사이언스픽션의이해>에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SF 작품을 살피며 우리의 삶을 고민한다. 영화 ‘스위트 투스’가 대표적이다. 스위트 투스는 기후 위기로 재난이 찾아온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작품이나 인간과 비인간적인 생명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등을 통해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의 인간 존재를 고민하기도 한다. 오 교수는 “토마스 모어가 자본주의가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를 먼저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도 포스트 휴먼과 같은 논의를 지금부터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의를 그렇게 짜게 됐다”고 말했다.

<사이언스픽션의이해>는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의 현대 기술도 다룬다. “우리도 미래를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 어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오 교수의 철칙 때문이다. 오 교수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10년 전부터 수업에서 비트코인을 소개한 오 교수는 기업 ‘메타’(meta)의 VR모델 ‘메타퀘스트 3’(Meta Quest 3)와 같은 첨단 기술이 적용된 장치, 인간의 화성 이주를 목표로 설립된 우주개발 기업 ‘스페이스엑스’(SpaceX)도 수업에서 다룬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사용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럼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기술 모두 곧 결합돼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오 교수는 “찾아올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상깊었던 학생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오윤호 교수.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인상깊었던 학생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오윤호 교수. 안정연 사진기자

 

 

인공지능의 시대, 문학의 필요를 답하다

오 교수는 SF가 지나치게 빠른 과학의 발전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매트릭스(1999), 터미네이터(1984) 등의 오래전부터 SF영화는 맞이할 현실을 예측하고 고민해 왔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전하며 인류가 멸망하는 미래를 미리 봤다. 오 교수는 “SF의 사고 실험을 통해 미리 위험성을 봤기 때문에 지금 인공지능의 윤리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픽션의이해>를 ‘미래학’이라고도 표현하는 오 교수는 “SF작품들을 읽고 감상하며 본교 학생들도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해 사색하고 사유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오 교수가 강의를 진행하는 목적이다. 오 교수는 학생들이 “어떤 태도로 사회를 보고 있는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21세기의 과학도 SF 작품을 통해 이런 지적인 사고 실험과 허구적 상상력이 결부돼야 무차별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제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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