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부가 2024년 연구개발비(R&D) 예산을 2023년보다 16.6% 삭감했다. 인문사회 분야지원은 더 미약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4년제 대학의 공학 분야가 연구비로 약 36조 원을 지원받은 반면 인문학 분야는 약 1조원을 지원받았다. 인문학 연구의 위기 속, 인문학 기반의 융복합 연구 공간으로 국내 포스트 휴먼 담론을 이끄는 이화인문과학원의 오윤호 교수, 신상규 교수를 만나봤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과학기술을 통해 지능, 신체 능력, 수명 등이 향상된 인간 혹은 근대적 인간 중심의 인간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을 의미한다.

 

철학의 역할에 대하여 사유하고 있는 신상규 교수의 모습.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철학의 역할에 대하여 사유하고 있는 신상규 교수의 모습. 안정연 사진기자

 

챗GPT, 구글의 바드(Bard), 국내 최초 버츄얼(virtual・가상) 인플루언서로 여러 광고에 출연하며 화제가 됐던 ‘로지(Rozy)’, 식당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서빙 로봇, 무인 로봇 공장, AI 의료.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과학의 발전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강의가 있다. 신상규 교수(이화인문과학원⋅호크마교양대학)의 <인공지능과포스트휴먼>이다.

<인공지능과포스트휴먼>은 SF영화를 소재로 인공지능의 특징, 본성에 대해 이해하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지 질문하는 강의다. 영화 ‘에이아이’(2001), ‘그녀’(2014), ‘투모로우’(2004), ‘매트릭스’(1999)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영생, 인공지능의 본질에 대한 이해, 로봇과의 사랑, 디지털 사회 보이지 않는 권력, 인류세 등 다양한 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신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현재의 당면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담은 강의”라고 설명했다.

 

포스트 휴먼의 시대, 새로운 미래를 질문하다

영화 ‘아이언맨’(2008)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인공 심장이 있고, 수트를 입으면 팔에서는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빔이 나온다. 팔과 발에서 나오는 빔으로 하늘을 날아 먼 곳을 순식간에 이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존재가 바로 ‘트랜스 휴먼’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간을 과학 기술을 통해 지적, 신체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다.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흐려진 트랜스 휴먼의 발달은 인간 존재에 의문을 던졌다. 신 교수는 “인공지능과 트랜스 휴먼의 등장 등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도구로 인공지능을 바라보면 인간 실존에 제기되는 문제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본질을 이해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휴먼 담론은 인간 존재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다. 넓은 의미의 포스트 휴머니즘은 근대적 인간에서 탈피한 새로운 인간관을 의미한다.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부터 시작된 인종 차별, 빈부 격차, 환경 파괴에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제외한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포스트 휴먼에 대한 논의다. 신 교수는 “포스트 휴먼은 앞선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인류가 맞이할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담론”이라고 말했다.

 

신상규 교수가  ‘인공지능과 포스트 휴먼’ 강의 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신상규 교수가 ‘인공지능과 포스트 휴먼’ 강의 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관성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기’

신 교수가 보는 우리 사회는 “상식과 관성에 길들어”있다. 변해가는 사회를 따라잡고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신 교수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교육 체계에서 배운 지식과 기성세대로부터 답습한 지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 교수는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인공지능과포스트휴먼>에 등장하는 영화 ‘그녀’를 예로 들었다. ‘그녀’는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위로받으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사만다는 인공지능 체제를 사용하는 수백 명과 동시에 사랑하고 있었고, 이에 테오도르는 혼란을 느낀다. 신 교수는 “우리는 남녀 관계를 1대1 관계라고 당연시하지만, 이는 사실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관계”라며 “영화 ‘그녀’가 제기하는 질문처럼, 인간이 맺고 있는 당연한 관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상규 교수가 집필에 참여한 ‘포스트 휴먼이 몰려온다’. 동일 교재를 ‘인공지능과포스트휴먼' 강의에서 사용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신상규 교수가 집필에 참여한 ‘포스트 휴먼이 몰려온다’. 동일 교재를 ‘인공지능과포스트휴먼' 강의에서 사용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철학으로 보는 과학

“우리가 미래를 완전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어떻게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할 수는 있죠.” 가만히 두면 인간은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흐름에 끌려가게 된다. 신 교수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 지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중심을 잡게 해 주는 것이 포스트 휴먼 담론이고, 철학적 사유에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방식에 맞춰서 기계 기술의 변화를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죠. ”

신 교수에 의하면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문제에 대한 단편적 사고가 인간의 경쟁력을 약화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다.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따져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살피고 질문을 다시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 교수는 “메타인지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은 답을 하는 법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인공지능이 생각을 대신해 주는 시대, 인간이 해야 할 것은 질문이죠”. 신 교수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새로운 현상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신 교수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닌 당연한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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