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은 나는 별것도 아닌 일을 크게 부풀려서 걱정하는 아주 몹쓸 재주가 있다. 이 정도면 재주가 맞다. 밖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순간 ‘어, 뭐지… 저거?’ 하는 생각을 필두로 ‘전쟁 난 거 아니야? 아닐 거야. 무슨 이벤트 아닐까? 불꽃놀이일 거야.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리는데? 지금 집에 라면 있나? 우리 가족은 대피 가방도 준비 안해놨는데. 대피하려면 가방이 몇 개 필요할까? 라면은 얼마나 넣어야 하지? 옷들은? 하… 큰일 아니어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이렇게 걱정들이 내 머릿속으로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수업을 듣는 교실에서 교수님께서 기습적으로 앉은 자리에서 뒤돌아 가까이 있는 학우들과 방금 배운 주제에 대해 간단히 토의해보라고 하실 때 역시 심장이 부풀어 오른다. 사람들이 이미 방방 뛰고 있는 트램펄린 위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져 균형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나의 심장이 그대로 느껴진다. 일단 어색한 눈맞춤의 시간이 짧고도 강렬하게 이어진다. 그다음, 정신을 차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입꼬리를 위쪽 방향으로 통일한다. 세상 어색한 웃는 입꼬리가 완성되면 어색한 인사말이 이어진다. 가끔은 인사말이 생략되기도 한다. 용기 있고 대범하고 멋있고 감사한 어느 한 분이 긴장감 충만한 토의의 시작을 알린다. “그럼… 이거 얘기해볼까요?” 잠시 정적, 학우들의 나름 힘찬 끄덕거림, 눈치, 망설임, 그리고 또다시 정적…. “저는…! 제 생각엔 (…)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을 머금은 남은 토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또 한 번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와… 조리 있게 말 잘하신다. 이제 내가 입을 열 차례인가? 너무 늦게 말해도 얘기할 게 고갈되어 안 좋은데… 그냥 내가 말해야겠다. 왜 입이 안 떨어지지? 말해야 돼. 입 좀 열어봐. 아, 정말 이렇게 내성적이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지. 이 의견 지금 말해야 한다고. 좀 단순한 의견인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말하는 게 나을 듯한데.’ 5분간의 짧은 토의시간 동안 광대한 고민들이 내 머릿속을 눈치 없이 유영한다. 정작 고민의 주인은 수영을 못하는데 고민은 올림픽 수영 금메달감이다.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한 친구가 평소 걱정 많은 내게 생일선물로 걱정인형을 사줬다. 늘 내 걱정을 들어주고 너무 많은 걱정에 허우적대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걱정인형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걱정에 파묻혀 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읽다가 지치는 건 아닐지 지금 이 순간도 걱정된다. 그러나 그 인형을 볼 때마다 그 친구의 마음이 떠올라서 인형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만큼은 걱정이 무의식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는다. 나의 걱정을 고마움이 삼키는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그 인형은 매순간 걱정바구니에 꽂혀있는 시들시들한 나를 잠시 뽑아서 찰나의 자유와 활기를 맛보게 해준다. 물론 다시 꽂혀 또 뽑히기를 학수고대하겠지만 말이다.

본래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인지라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이런 나 자신을 감당하기조차 힘들다. 걱정이라는 돌이 사정없이 날아와 나를 다치게 하는데, 그 돌을 치울 힘이 없어서 결국 나를 돌무더기에 파묻히게 그대로 내버려둘 때도 있다. 그렇기에 예민하고 쓸데없는 고민을 되풀이하는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또 걱정의 바다에 빠져버린다. 어느 특정 걱정에서 벗어나도 다음 걱정의 길들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지나가기 어렵지 않은 포장도로와 같아서 이끌리듯 들어서게 된다.

결국 나는 이런 내 성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아, 난 이런 사람이구나. 거 참 걱정도 많네.’ 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좀 더 생각해보면 굳이 바꿀 필요도 없었다. 걱정이 많은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처럼 평소에 걱정이 많고 예민한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고, 더 적절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한숨의 깊이와 수심에 찬 표정들, 그리고 그들의 심란함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하소연도 하고 조언도 건네면서 걱정인(人)과 걱정인형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걱정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은 남보다 더 조심스럽기에 위험을 더 빠르게 감지할 수 있고, 무섭고 두려운 게 많으니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려움의 반작용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시그널, 킹덤, 악귀 등의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는 의외로 겁이 무척 많다고 한다. 겁이 많기에 오히려 무서운 것들을 잘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캐릭터가 이런 모습으로 이쪽에서 등장하면 더 무섭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고 한다.

‘밖에서 나는 소리 하나로 헬리콥터, 전쟁, 피난길, 불꽃놀이까지 떠올리다니. 1분 동안 그 상상들과 함께 불안, 두려움, 긴장감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까지 만들어내다니. 와우! 대단한걸?’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물론 걱정이 많기에 여전히 괴로운 점이 더 많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생각의 관점을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내가 누군가처럼 엄청난 작가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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