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책으로 세상을 읽다, 나눔으로 세상을 보다.’ 책을 통해 본 세상을 이야기하고, 나눔의 경험을 또 한 번 나누는 제9회 이화 에크리(에크리)가 9월21일 ECC 극장에서 개최됐다. 에크리는 학생들의 성찰적 사유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호크마교양대학이 주관하는 글쓰기 대회로, 필독 도서 5권 중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는 서평 부문과 주어진 주제어 중 2개를 연결해 에세이를 작성하는 나눔 에세이 부문이 있다. 이번 에크리는 서평 부문 52명, 나눔 수기 부문 34명이 참여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인 이번 행사에서 수상을 거머쥔 이화 대표 글쟁이들, 서평 부문 1등 김선우(통계·22)씨, 2등 박수경(경제·23)씨, 3등 임소원(국문·22)씨, 나눔 수기 부문 1등 강지혜(영문·23)씨, 2등 박기선(소프트·18)씨, 2등 정예림(문정·23)씨를 만나봤다.

 

1일 개최된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strong>백가은 기자
1일 개최된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백가은 기자

 5권의 필독 도서(불안, 궤도이탈, 비비안 마이어, 아Q정전,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중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었다. 1일, ECC B143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김수경 교수(호크마교양대학)는 많은 학생들이 ‘불안’을 선택한 이유와 현재 대학생들의 삶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로 서평 부문 시상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책 내용 정리에만 집중한 것 같다”며 “책을 넘어선 인식이나 재해석은 찾아보기가 어려워 아쉬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위험 부담에 대한 학생들의 불안이 반영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수상자들은 단순한 정리를 넘어 책 밖으로도 인식을 확장했고, 글쓴이의 재해석이 충분히 이뤄진 작품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알랭 드 보통의 인문 철학 에세이 ‘불안’은 현대인의 불안심리와 욕망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해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불안’을 주제로 서평을 쓴 52명의 참여자 중 1, 2, 3등을 차지한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산다’ 김선우씨 , ‘불안이라는 시소를 타는 법’ 김수경씨, ‘인문학, 불안’ 임소원씨의 글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5권의 필독 도서 중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선택한 이유는

수경: 사실 ‘불안’이 리스트의 맨 첫 번째 순서에 있어서 별 생각 없이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골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초반에 나오는 구절 ‘사람들이 더 많이 얻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이다’에 깊이 공감했다. 술술 읽혀 368페이지의 책을 1시간 만에 다 읽었고, 이 책으로 서평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불안으로) 많이 괴로워하길래 사회적으로도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선우: ‘불안’은 전에 읽다가 중간에 그만뒀던 책이었다. 끝까지 책을 읽지 못한 게 아까워 다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 앞에 있는 중고서점에 갔다. 마침 에크리에서 제시한 5권의 필독 도서 중 구매할 수 있는 책이 ‘불안’ 밖에 없어서 ‘이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원: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었다.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렇듯 나도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다. ‘불안’이라는 책이 그 불안함을 양지로 끌어내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는 지침이 되길 바랐다.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수경: 서평의 제목이 ‘불안이라는 시소를 타는 법’이다. 불안의 원인에 집중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인데, 사람들이 오히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다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인 성공으로 여겨지는 의대에 가지 못해 고통받는 입시생이 많다. 그래서 ‘이 사회는 왜 그럴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시소는 자기 발로 땅을 박차면서 타는 동시에 혼자서는 탈 수 없다. 이게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시소를 같이 타는 사람이 필요하듯, 삶도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불안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외부 힘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불안이라는 시소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다.

선우: ‘우리가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시대는 우리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음이 분명하다’는 문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능력주의 얘기를 많이 했는데, 현대인들은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를 가짐과 동시에 모든 게 나한테 달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이 시대는 실패한 시대다. 다만, 책에서 우리의 불안이 개인의 실패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쌓아온 관습 때문이고 시대적 반영이라고 알려주듯, 우리는 이 실패한 시대에서 풀 죽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 

소원: ‘불안’이라는 시대적 고민을 조망하는 방법이 왜 인문학적 방식이어야 하는지 주목했다. ‘불안’이라는 감정도 사람의 마음이니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피상적인 접근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적 방식으로 접근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갖는 의미는

수경: 글을 쓴다는 건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왜 이렇게 생각해?’, ‘왜 이렇게는 생각 안 해?’라는 식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손으로 글을 쓰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더 솔직하게 나타낼 수 있다. 노트북으로 쓸 때는 클릭 한 번에 문단을 옮길 수 있고, 맞춤법 검사도 할 수 있어 편하지만 막상 어떻게 쓸지 생각은 안 난다. 손으로 쓰면 그렇지 않다.

선우: 항상 머릿속에 생각이나 걱정이 가득하다. 생각을 쏟아내지 않으면 계속 쌓여 문제가 더 커지는 느낌이 든다. 일기나 글을 쓰고 나면 그나마 좀 잊을 수 있는 것 같다. 대회에 참여해 글을 다 쓰고 나오니 연필의 흑연이 묻어 손날이 까매져 있었다. 집 가는 길에 까매진 손을 보면서 글을 써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풍족함을 느꼈다.

소원: 글쓰기는 인생을 가꿀 용기를 주고, 삶을 삶답게 만들어 준다. 일기를 쓰면 보잘것 없다고 느껴진 하루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만의 글쓰기 비결은

수경: 우선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초등학생 때는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었는데, 그 이후로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안 탄 적이 없었다. 글을 많이 읽은 경험이 기초 체력이 됐다. 글을 쓸 때 제일 공 들이는 부분은 도입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하며 의문을 던져줘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글을 쓸 때 ‘이 시대에는 많은 경제적 불평등이 있다’고 쓰면 안 읽고 싶다. 반면, ‘선사시대에는 다 같이 굶었는데, 지금은 먹을 게 넘쳐 나도 누구는 굶고 누구는 안 굶는다. 왜 그런지 아냐’고 쓰면 읽고 싶다. 읽고 싶은 글을 만들려면 흥미로운 스토리가 필요하다. 

선우: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게 제일 도움이 됐다. 뭔가를 읽으면 연관 지어 읽는 걸 되게 좋아한다. 책이나 영화에서 발견한 키워드를 또 다른 책이나 영화로 계속 이어서 넓혀 나간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를 읽다가 18세기 영국 초상화에 대해서 읽고, 그러다 산업혁명 책을 읽고, 끝에 가면 전혀 관계없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글을 쓸 때 더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찾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정해놓고 중심 문장을 쓴 다음, 마인드맵으로 뻗어 나가 근거를 덧붙이는 게 중요하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