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중앙동아리 영화패 누에의 영화가 부산의 스크린에 올랐다. 매년 10월이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로 후끈한 부산에 누에가 영화 제작자로 참석하게 됐다. 누에가 만든 세 영화 ‘아더바디즈’(2021), ‘달려있는 하니’(2022), ‘36컷의 여름’(2022)이 제6회 커뮤니티비프(Community BIFF) 리퀘스트시네마 ‘여성에 대하여’ 카테고리에 선정돼 7일 부산에서 상영됐다. 

'달려있는 하니'(2022) 팀의 황서현 감독, 위예원 감독, 오예인 감독(왼쪽부터).  <strong> 박소현 사진기자
'달려있는 하니'(2022) 팀의 황서현 감독, 위예원 감독, 오예인 감독(왼쪽부터). 박소현 사진기자

커뮤니티비프는 2018년 신설된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파생된 축제이다. 영화를 즐기는 관객, 영화인, 연구자, 활동가,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행사를 구성하고 참여한다. 커뮤니티비프에서 진행되는 리퀘스트시네마는 대표적인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신청하고 관객들이 ‘프로그램 선정 투표’를 진행한 뒤, ▲프로그램 실현 가능성 ▲모객 가능성 ▲독창성 및 창의성을 고려한 정성적 평가를 거치면 상영될 영화가 최종 선정된다. 

'엇박자쇼크'에 참여했던 누에 37기 감독들과 작품 속 배우들, 누에 부원들의 모습이다. 제공=황서현 감독
'엇박자쇼크'에 참여했던 누에 37기 감독들과 작품 속 배우들, 누에 부원들의 모습이다. 제공=황서현 감독

누에 37기는 ‘엇박자쇼크’라는 프로젝트로 영화 세 편을 선보였다. 엇박자쇼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비틀거리며 걷지만, 사실은 모든 순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는 뜻이다. ‘아더바디즈’, ‘달려있는 하니’, ‘36컷의 여름’을 통해 엇박자의 삶을 사는 여성들을 조명했다. ‘아더바디즈’는 현대 여성이 겪는 성에 대한 공포를 관객 참여 방식으로 풀어낸 인터랙티브 영화고, ‘달려있는 하니’는 어느 날 다리 사이에 뿔이 자란 여성의 이야기를 찍는 감독들의 페이크 다큐 영화이다. 또 ‘36컷의 여름’은 돌아가신 엄마의 카메라 속 현상되지 않은 순간들을 복원해 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그들은 ‘엇박자쇼크’를 통해 관객들에게 “엇박자로 가더라도 그것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니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7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 누에 37기 감독들이 오픈마이크 형태인 관객과의 만남에 참여하고 있다. 제공=황서현 감독
7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 누에 37기 감독들이 오픈마이크 형태인 관객과의 만남에 참여하고 있다. 제공=황서현 감독

‘엇박자쇼크’의 세 작품 중 ‘달려있는 하니’를 제작한 누에 37기 오예인 감독(휴기바·20), 위예원 감독(경영·21), 황서현 감독(사복·21)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커뮤니티비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도전 의식 덕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연장선인 커뮤니티비프에 스스로 만든 영화들이 상영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엇박자쇼크’를 고안했다. 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는 건 모든 영화인의 꿈”이라며 “그곳에 도전해본다는 것 자체가 누에에게 큰 의미였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남성 중심의 영화 산업에서 누에의 영화들이 ‘여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대표해 상영될 수 있어 감사했다”며 “사회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는 여성영화를 선보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세 감독은 타 영화 제작사와 구별되는 누에의 차별점을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여성들이 모인 동아리’로 봤다. 오 감독은 “누군가 목소리를 냈을 때 그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고 존중받는 단체는 많지 않다”며 “누에는 다름이 존중받는 공동체”라고 덧붙였다. 모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누에의 영화는 공동 감독제로 제작된다. 부원들이 좋아하는 장르, 메시지 등을 서로 공유한 뒤 비슷한 주제를 원하는 사람끼리 모여 영화를 제작한다. 오 감독과 위 감독, 황 감독은 그렇게 ‘달려있는 하니’에서 만났다. 

'달려있는 하니' 촬영 현장 모습이다. 제공=황서현 감독
'달려있는 하니' 촬영 현장 모습이다. 제공=황서현 감독

‘달려있는 하니’는 다리 사이에 갑자기 뿔이 자라며 사회에서 정의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여주인공 ‘하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주목할 것은 단순히 ‘하니’와 또 다른 여주인공 ‘예리’의 이야기만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니와 예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는 독립영화 감독 세 명의 시선도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 감독의 각본에 매력을 느낀 오 감독과 황 감독은 연출을 맡았다.

‘달려있는 하니’는 최종 각본이 나오기까지 끝없는 수정을 거쳤다. ‘성별을 모른 채 시작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고민했다. 초반엔 주인공 하니와 예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제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완결된 이야기로 끝맺어야 했기에 관객들에게 이 둘의 이야기가 ‘정답’ 같아 보일까 우려됐다. 논의 끝에 세 감독은 하니와 예리에 대한 영화감독들의 논쟁이 담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달려있는 하니’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달려있는 하니'의 제작 비하인드를 설명하고 있는 황서현 감독, 위예원 감독, 오예인 감독(왼쪽부터). <strong>박소현 사진기자
'달려있는 하니'의 제작 비하인드를 설명하고 있는 황서현 감독, 위예원 감독, 오예인 감독(왼쪽부터). 박소현 사진기자

영화 전공생 하나 없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부터 영상 편집을 마치는 것까지 모두 해내기는 쉽지 않았다. 황 감독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감독의 자리에 오르니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까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이화여대 영화패 누에라는 이름을 걸고 만드는 영화다 보니 자칫 영화 속 메시지가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나 동아리 누에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질까 우려했다”며 “정답을 내리는 결말보다는 해당 주제에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달려있는 하니’에 감독들이 논쟁하는 장면을 넣었다”고 말했다. 누에의 영화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관객에게 생각을 촉구하는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누에 감독들은 후배 이화인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건넸다. 황 감독은 “영화 비전공자라고 주눅 들지 말고, 주위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열심히 참여하라”고 말했다. 위 감독은 “작업물은 영감보다 마감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며 “공모전, 상영회 같은 목표를 세우고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집중하라”고 말했다. 그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완벽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