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글 피디에프 나눔 해주실 분 구해요!’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 ‘피디에프’(PDF∙Portable Document Format)를 검색하면 이런 내용의 글이 하루에도 많게는 30개까지 올라온다.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지나 교재 구매 시기가 오면서 학생들은 교재를 피디에프 파일로 복제해 공유했다. 스캔한 교재를 피디에프 파일로 만들어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멈춰야 한다는 일부 학생들의 의견이 있지만, 비용이나 휴대성을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피디에프 파일 공유를 옹호한 취재원들은 불법을 이용해야 하는 불가피한 현실을 토로하며 익명 표기를 요청했다.

교보문고 이화여대점에 쌓여있는 <통합적사고와글쓰기> 및 <기독교와세계> 교재들. <strong>권찬영 기자
교보문고 이화여대점에 쌓여있는 <통합적사고와글쓰기> 및 <기독교와세계> 교재들. 권찬영 기자

 

교재 피디에프 파일 복제 실태는

본교 출판문화원은 8월28일 “도서 불법 스캔 피디에프 파일 공유를 금지한다”고 본교 홈페이지 공지사항(ewha.ac.kr)출판문화원 공식 홈페이지(ewhapress.com)에 공지했다. 같은 내용의 메일도 교내 전체 구성원에게 발송했다. 출판문화원은 “도서 불법 스캔 파일 공유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새 학기를 맞아 커뮤니티 실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에브리타임에 게시된 피디에프 파일 공유 요청 글을 직접 세본 결과, ‘모두의 에타’ 게시판 기준 9월1일~9월20일까지 177건의 글이 올라왔다. 교재 구매 수요가 많은 개강 초, 9월6일에는 하루에만 30개가 올라왔다. 출판문화원은 “학기 초 올라오는 불법 공유 관련 글을 약 50건~100건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글을 통해 생긴 오픈채팅방에서 이뤄질 공유까지 생각하면 실제 거래 건수는 파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전했다.

출판문화원은 필수교양 과목 교재인 ‘기독교와 세계’,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와 전공과목 교재를 출간한다. 출판문화원에 따르면 <통합적사고와글쓰기> 수업의 경우, 2023년 2학기 수강생은 1500명 이상이지만 도서는 40권만 판매됐다. 에브리타임에서 중고 서적을 거래하는 책방 게시판에 2023년6월 이후 올라온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 판매 글은 67개다. 이 중 49건의 거래가 완료됐다.

출판문화원은 교재 피디에프 불법 복제에 대해 “합법적으로 도서를 출판할 출판권에 대한 침해”라고 말했다. 도서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지만, 출판문화원도 저자와 계약을 통해 도서를 출판하고 판매할 출판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는 과목 특성상 수필이나 주장하는 글 등 외부 저자의 여러 글이 인용돼 있다. 책을 복제한다면 교재 저자의 저작권뿐만 아니라 수록글 저자의 저작권까지 침해하는 것이다.

교재 복제 두고 펼쳐지는 갑론을박

이대학보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업 교재가 필요한 경우 어떻게 확보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38.1%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디에프 파일을 구매하거나 나눔 받는다’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9월18일부터 9일간 본교 재학생과 졸업생 11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설문은 에브리타임, 이대학보 공식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학과 채팅방 등을 통해 배포됐다.

구매한 교재를 인쇄소 등 전문 업체에 맡겨 피디에프 파일로 제작하거나 제작된 피디에프 파일을 거래하는 것은 금전적 이익 취득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이다. 다만 정당한 방법으로 구매한 교재를 가정에서 직접 피디에프 파일로 제작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휴대성 때문에 전공책을 직접 스캔해 사용한다는 김지예(뇌인지∙19)씨는 “2~3년 전에는 피디에프 파일 공유를 지양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작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비용이나 휴대성을 이유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비용이 부담되면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중고 책을 구매하면 되고, 휴대가 힘들면 직접 스캔해 피디에프 파일을 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피디에프 파일 제작과 공유는 괜찮지만 금전 거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ㄱ(전자전기∙19)씨는 “공부 모임을 위해 공유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돈을 주고 거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는 교재 피디에프 복제 파일 공유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교재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 피디에프 파일을 에브리타임에서 2000원에 구매했다는 ㄴ(식품∙23)씨는 “교재가 너무 비싸고 들고 다니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디에프 파일이 거래되고 있는지 몰랐다는 ㄷ(유교∙20)씨도 “만약 (피디에프 파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불법이어도 구매했을 것 같다”며 “전공책이 너무 무거워 사물함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ㄹ(커미∙23)씨는 “한 학기만 쓸 건데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며 “교재를 다 사고 나면 한 달 생활비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설문에 따르면 피디에프를 사용하는 주요 이유는 비용과 휴대성 때문이다. ‘본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교재의 가격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91.5%가 ‘비싸다’ 또는 ‘너무 비싸다’고 답했다. ‘교재 피디에프 파일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휴대성이 38.1%로 주를 이뤘고 필기의 편리성(28.6%), 비용(23.8%)이 그 뒤를 따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각종 교재 피디에프 파일이 공유되는 현상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75.9%가 ‘비용, 휴대성 등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므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비용과 휴대성 고려한 전자책 출간, 실현 가능할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쉽게 휴대할 수 있는 전자책에 대한 수요도 많았다. ‘교재가 전자책으로 출판된다면 구매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주로 종이책을 구매해 온 이들 중 67.5%, 피디에프 파일을 사용해 온 이들 중 68%가 ‘예’ 라고 답했다. ㄴ씨는 “종이책은 사지 않아도 전자책은 살 것 같다”고 말했다. ㄷ씨도 “1순위가 휴대성”이라며 “전자책으로 출판된다면 무조건 구매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전자책 수요를 전하자 출판문화원은 “이미 전자책으로 출간한 도서가 있지만 필수교양 교재의 전자책 출간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출판문화원이 출간한 전자책 253권 중에서 언어교육원에서 사용하는 한국어 교재는 48권이다. ‘통합적 사고와 글쓰기’나 ‘기독교와 세계’와 같은 필수교양 교재는 없다.

교재 집필에 참여한 저작권자들도 피디에프 파일 복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시민생활과 법’ 집필에 참여한 서을오 교수(법학과)는 “법을 공부하는 수업의 학생들이 교재의 스캔본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특히 유료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면 더욱 큰 문제”라고 말했다. <통합적사고와글쓰기> 수업 교수를 대표해 의견을 밝힌 안상원 교수(호크마교양대학)는 “학생들 사이에 불법 유통이 만연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교재로 교육하는 입장에서도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종이책의 판매 부수가 줄어들면 양질의 교재를 개발해 출간하는 의의가 사라진다”며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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