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번역된 여성작가의 세계고전문학을 정리한 목록을 만든 이가 있다. 이 목록에는 1950년대 이전 출생한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 약 700권이 6~7권씩의 묶음으로 정리돼 있다. 목록을 만든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2022)’의 지은이 홍수민 작가(31·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 작가는 아동문화와 소비문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일본 사이타마대(Saitama University)에서 ‘토에이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50년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호주 시드니대(The University of Sydney)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홍수민 작가가 받은 2022 트위터 코리아 프로그램 키트의 모습. 제공=홍수민 작가
홍수민 작가가 받은 2022 트위터 코리아 프로그램 키트의 모습. 제공=홍수민 작가

 

함께 읽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여성 문학 목록 정리

홍 작가가 만든 목록은 일주일간 읽도록 권장하는 책묶음을 줄줄이 달아놓은 형식이다. 현재 목록에는 아흔아홉 번째 책묶음까지 올려져 있어 2년간 매주 읽을 수 있는 분량이 마련됐다. 홍 작가가 여성 작가들의 세계고전문학을 정리한 이유는 오로지 ‘재미’ 때문이다. 그는 “내 취미는 소설 읽기인데 함께 읽고 토론하며 놀 사람이 없었다”며 “목록을 정리해 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읽자고 제안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0년 7월부터 시작된 책묶음 만들기는 국립중앙도서관 웹사이트(nl.go.kr)에서 사서지원서비스가 제공하는 국가전거의 도움을 받았다. 국가전거자료는 이름, 표제명, 주제명을 비롯한 책의 특징을 제공한다. 국가전거 검색 기능에서는 저자의 활동 연도와 활동 분야를 설정할 수 있다. 책들의 분류 기준은 총 두 가지다. 홍 작가는 “기본적으로는 연대순을 고려하지만 같이 읽었을 때의 시너지도 고려한다”고 말했다.

홍 작가는 “단순 문학사로만 접근하면 작품이 파편적으로 보인다”며 “작품 내용에서 공통점을 찾아 묶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용자들이 책묶음을 따라 읽으면 자연스럽게 문학사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실제로, 두 번째 책묶음은 문학사적으로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넘어가는 시기인 15세기 작품으로 만들어졌지만, 유토피아 문학과 프로토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내용의 유사성으로도 묶인다. 과학기술을 토대로 이상세계를 그리는 동시에,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주장하는 여성들인 서프레제트의 등장 이전 작품이기 때문이다.

홍 작가가 책묶음 정리를 시작한 2020년에는 1년간 출간되는 여성 고전 문학이 손꼽힐 정도였지만 현재는 여성 작가의 작품만을 담은 전집이 출간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출시되는 여성 문학이 많아지자, 목록 정리의 방향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자신이 재밌게 읽은 책을 추천하는 의미로 올렸다면, 이제는 읽지 않은 신간도 연대순에 따라 목록에 올리기도 한다. 추천보다는 자료저장소의 의미가 훨씬 짙어졌다.

책묶음의 권수도 달라졌다. 다독가인 홍 작가에게는 일주일에 6~7권이 적절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본인과 달리) 바쁜 현대인을 고려해 1일 1권으로 만들었지만,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더 바빴다”고 말했다. 여성 문학 책묶음은 여전히 6~7권으로 구성되지만, 홍 작가는 향후 만들 한국 문학과 청소년 문학 책묶음에 있어서는 “현재와는 다른 정리 방식을 고안해야겠다”고 말했다.

 

여성문학사와 문학사는 동일어

홍 작가는 “남성 고전 문학을 이런 방식으로 저장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며 “여성 문학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번역된 18세기 이전의 여성 작가 소설은 20권 남짓이다. 여성 작가 소설의 개수가 현저히 적어 목록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홍 작가는 ‘여성 작가’ 그리고 ‘1950년대 이전 출생’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책묶음을 만들었다.

그는 “문학사는 곧 여성 문학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권위를 가진 문학은 진지한 목적으로 쓰인 문헌들이었고, 소설처럼 유희를 위해 쓰인 것들은 진지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며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장르는 늘 주류에 대한 반동으로 존재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 불리우는 ‘겐지모노가타리’는 11세기 초 일본의 궁녀였던 무라사키 시키부에 의해 탄생했다. 홍 작가가 만든 첫번째 책묶음에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쓰여진 헤이안 시대의 문학들이 수록돼 있다.

여성 작가들이 새로운 문학 장르의 지평을 열었고, 그 흔적은 문학사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는 “그렇기에 문학사와 여성문학사는 같은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여성 문학을 문학의 대표로서 소개해도 문학사 전반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 이를 기준으로 목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혼자만의 재미로 시작해 나누는 기쁨까지

홍 작가는 책묶음 목록 제작 덕분에 ‘2022 트위터 코리아 크리에이터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트위터 코리아 크리에이터 프로그램은 국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제작과 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이다. 참여 조건으로는 ▲팔로워 1000명 이상, ▲지난 3개월간의 꾸준한 활동, ▲한 개 이상의 특정 관심사에 열정을 가지고 활동, ▲프로그램 기간에 일주일에 최소 한 번 목소리로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인 ‘스페이스’ 진행 등이 있다.

홍 작가는 스페이스를 진행하며 책묶음을 활용하는 팔로워들의 생생한 후기를 들었다. 후기 중에서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홍 작가의 목록을 참고한다는 사람도, 독서모임 계획을 위해 활용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책묶음을 ‘온전히 그대로 따라서 읽고 있다’는 후기는 받지 못했다. 그는 “고전 문학은 대중적이라 많은 이들이 책묶음을 따라 읽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랐다“며 “그래도 많은 사람의 취미 독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제인 오스틴 이전 여성 고전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그는 “제인 오스틴 후부터는 쓰여진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현재에도 많이 읽히고 있다”며 “그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조명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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