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꾀꼬리가 된 관객, 시각을 넘어 공감각으로 전시 즐긴다

강 교수가 작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벽에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자리 검은 자리’가 걸려있다. <strong>정휘수 기자
강 교수가 작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벽에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자리 검은 자리’가 걸려있다. 정휘수 기자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봄 90일 동안 짜내니 나의 시름 그 누가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지는 초여름이 꽃이 피는 봄보다 좋다고 하던가)”

봄날 홀로 남겨진 화자의 외로움을 노래한 이수대엽의 여창가곡 ‘버들은’이 전시회장에 흘러나온다. 여창가곡은 여성이 부른 가곡이다. 관람객들은 사계절의 자연환경을 담은 작품 사이를 걸으며 뒷산을 거니는 듯한 환상에 빠진다.

강서경 교수(동양화과)가 9월7일(목)~12월31일(일)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를 열었다. 강 교수는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4번째 한국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강 교수는 입체적인 전시 공간을 활용한 풍경화를 표현했다. 관람객은 버드나무 사이를 움직이는 작은 꾀꼬리가 돼 강 교수의 설치미술을 관람한다. 꾀꼬리로 상징되는 개인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풍경을 이뤄냈다.

강 교수의 전시회에 등장하는 ‘꾀꼬리’는 조선시대 궁중무용 ‘춘앵무’의 ‘앵’을 의미하는 꾀꼬리에서 착안한 것으로, 한 명의 사람을 상징한다. 춘앵무는 꽃무늬를 수놓은 돗자리인 화문석 위에서 한 사람이 추는 무용인데 이때 무용수는 봄의 꾀꼬리를 의미한다. 2018년에 필라델피아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강 교수 개인전인 ‘검은자리 꾀꼬리’와 같다.

전시회 1층의 사진이다. ‘자리’와 더불어 사계절의 산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전시돼있다. <strong>정휘수 기자
전시회 1층의 사진이다. ‘자리’와 더불어 사계절의 산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전시돼있다. 정휘수 기자

검은자리 꾀꼬리는 ‘개인의 제한된 자리에 대한 사유’에 집중했다면 버들 북 꾀꼬리는 수천수만의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확대된 공동체의 장’을 담았다.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관람을 즐기는데, 이는 흡사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풍경과 유사하다. 전시된 130여 점의 작품 사이를 관람객들이 날아다니는 셈이다.

전시회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 1층과 우주를 형상화해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2층으로 구성된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조선 전통 악보인 정간보를 사각형으로 형상화한 작품 ‘정井’이 보인다. 사각형 안에는 이번 전시의 테마인 ‘버들은’이 적혀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사각형과 보이지 않는 사각형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민하는 작업’이라는 회화에 대한 강 교수의 정의처럼, 눈에 보이는 사각형 안에 시를 채워 넣었다. ‘정井’을 비롯해 1층에 전시된 작품 곳곳에서 사각형을 찾을 수 있다.

2층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산과 구름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하나로 어우러져 우주를 이룬다. 이 중 ‘귀’는 천장에 매달려 미세한 기류에도 흔들린다. 관람객의 발소리를 듣는 한 쌍의 귀를 붙인 형태로, 바닥에 설치된 알루미늄 작품 ‘산’과 어우러져 하늘에 뜬 구름처럼 보인다.

‘산’과 ‘귀’가 어우러져 전시회 2층에 우주가 만들어졌다. 1층과는 다른 몽환적 분위기이다. <strong>정휘수 기자
‘산’과 ‘귀’가 어우러져 전시회 2층에 우주가 만들어졌다. 1층과는 다른 몽환적 분위기이다. 정휘수 기자

강 교수는 이번 전시에 ‘공존’을 담았다. “수만 마리의 꾀꼬리들이 풍경 안에서 천천히 거닐고 날아다니면서 서로 공존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화면에 작가의 여러 작품이 겹쳐 나타나는 ‘버들 북 꾀꼬리(영상)’는 이런 공존을 보여준다. 실과 나무로 사각형 안 공간을 보여주는 작품인 ‘자리’가 반투명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전시회 2층에 전시된 12점의 작품이 만든 우주가 중첩돼 재생된다.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시각적 경험을 넘어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관객에게 제공되는 음성 해설에선 작품 설명 대신 유희경, 김뉘연, 김리운 시인의 창작시가 낭송된다. 이때 창작시는 세 명의 시인이 ‘버들은’을 듣고 느낀 바를 담았다.

본교를 졸업한 강 교수는 “학부생 때부터 나에게 ‘그림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며 “이 질문들이 작품 창작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질문은 강 교수가 설치 미술을 하게 만들었다. 공간 안에 그림을 ‘담는다’는 생각은 그리는 것을 넘어 실제 공간에 작품을 재현하는 공간적 실험으로 이어졌고, 실험을 통해 설치 미술이 탄생했다. 동양화와 설치 미술이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의 조합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강 교수는 “학부생 때부터 스스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도 열려있어야 재밌다”며 계속 질문을 던지며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21년부터 투병 생활로 본교를 휴직한 그는 “건강을 회복해 학생들을 다시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며 개인적인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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