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9월은 독서의 달이다. 원하는 책을 읽을 자유가 제한되던 독재 정권 시절, 많은 대학생들은 ‘불건전한 사상이 담긴 금지 서적을 읽는다’는 죄목으로 탄압당했다. 독서의 달을 기념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금서’ 논란을 살펴보고, 이러한 금서를 보관하는 본교 생활도서관을 찾아갔다. 

학생문화관 242호에 위치한 생활도서관 입구. 제공=생활도서관
학생문화관 242호에 위치한 생활도서관 입구. 제공=생활도서관

 

1980년대 독재 정권은 사상적 이유로 특정 서적을 지정해 출판과 유통을 금지했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인 2023년, 특정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학부모 단체의 민원과 특정 책 보유 현황을 제출하라는 국회의원의 요구에 여러 인권단체가 반발했다. 민원과 도서 보유 현황 제출은 간접적인 형태의 ‘금서 지정’이며 도서관에 대한 검열이라는 것이다. 본교에는 이러한 ‘금서’를 약 20년 전부터 모아온 특별한 도서관이 있다. 

 

과거부터 현재진행형인 ‘금서’ 논란

5월 충남 지역에서 학부모 단체가 ‘달라도 친구’, ‘세상을 바꾼 아주 멋진 여성들’ 등의 특정 도서 114권을 공공도서관에서 빼라는 내용의 민원을 넣었다. 7월 서울시의회 의원은 서울시에 위치한 학교 도서관에 특정 도서 17권의 비치 현황 정보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전국 도서관에 간접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두 사건에서 논란이 된 책들의 공통점은 성교육·성평등 도서라는 것이다. 특히, ‘Girls' Talk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 주지 않는 것들’이나, ‘10대를 위한 빨간 책’이 공통으로 언급됐다. 이에 맞서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우리는 도서관에 대한 일체의 검열을 반대한다”를 주제로 1일부터 7일까지 제9회 금서읽기주간 캠페인을 개최했다. 

금서는 국가를 비롯한 지배세력에 의해 출판 또는 판매가 금지된 책을 의미한다. 저작권 위반이나 사회적 논란과 같은 합당한 이유로 이용이 제한된 책도 있다. 본교 중앙도서관에서 JMS 교주 정명석의 책을 ‘이용 보류’ 처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지배세력이 감추려는 사상이나 역사에 관한 책이 금서로 지정되기도 한다. 현재에는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지만, 독재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에 의해 규제됐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그렇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며 도서 검열에 맞서는 생활도서관 

이처럼 국가에서 합당한 이유없이 금서를 지정하던 1990년대에 중앙도서관에 들일 수 없는 책을 모으는 ‘생활도서관’이 등장했다. 고려대학교에서 1990년에 처음 시작된 ‘생활도서관’은 도서관을 생활 속으로 들이자는 움직임 속에 만들어졌다. 

본교 생활도서관도 당대 정권의 출판 검열과 금지 서적 지정에 대항하고,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1994년3월에 대학 내에 만들어졌다. 생활도서관은 사회주의 서적부터 퀴어 담론에 대한 서적, 정권을 비판하는 풍자 소설로 채워졌다. 중앙도서관에 없는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들이기 위해 학내외 문학회 문집이나 교지, 발간지도 모았다. 

생활도서관은 개관부터 항상 학생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기능했다. 학생문화관 242호에 위치한 생활도서관은 차분하고 침묵을 유지해야 하는 열람실에서 벗어나 도서관의 다양한 가능성을 꿈꾼다.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김민지(영문·21)씨는 “도서관이 조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도서관에서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를 수도, 책을 소리 내 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생활도서관은 평일 오전11시부터 오후5시까지 모두에게 열려있고, 그 외 시간에는 공간 대여를 진행한다.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나 수업 조별과제 팀원, 각종 소모임 등 여러 단체가 생활도서관을 이용한다. 

생활도서관은 공간 대여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핵심 역할인 책 대출도 진행한다. 이름과 연락처, 학과를 말하면 한 번에 3권을 2주간 대여 가능하다. 대출 기간 내에 1회 일주일 연장이 가능하며 연체 시 연체된 기간만큼 대출이 불가하다. 

총학생회비로 운영되는 본교 이화자치단위연합회인 생활도서관은 학내 인권 감수성과 문화 다양성 증진에 힘쓰고자 기획도서전, 작가와의 대화, 세미나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1학기에는 새 학기를 맞이해 열린세미나 ‘'명문대’에 입학한 당신께: 대학은 누구에게나 당연한가요?’를 개최해 대학생이라는 특권과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8월 한 달 동안 생태주의, 여성, 노동, 가족의 형태 등에 대한 단편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생활도서관이 주관하는 행사들은 대부분 본교 학생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다. 행사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은 누구든지 환영하자는 취지다. 김씨는 “아직까지 외부인이 행사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공지에 명시하는 것만으로도 읽는 이들이 (학벌주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활도서관은 18일(월)부터 26일(화)까지 다른 이화자치단위연합회와 함께하는 릴레이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세미나의 공통 주제는 ‘국가 폭력’으로 생활도서관이 맡은 세부 주제는 ‘문화에 대한 검열과 지원 중단’이다. 최근 ‘금서’ 지정 논란에 대해 생활도서관 측은 “검열의 역사는 국가가 문화의 힘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고 지속된다”며 “문화는 생활의 반영이기에 삶의 힘과 아름다움을 존경하지 않는 권력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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