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점의 서가. 책방지기가 고심해서 고른 책들이 놓여있다. 제공=이서점.
이서점의 서가. 책방지기가 고심해서 고른 책들이 놓여있다. 제공=이서점.

광주광역시 동구에는 서점이 아닌 서점이 존재한다. ‘이것은서점이아니다(이서점)’라는 간판을 단 독립서점은 예술과 철학 서적을 중심으로 세상의 혐오와 차별에 대항한다. 이서점은 인권, 동물권, 젠더 등과 관련된 서적을 모아두는 서점인 동시에 공연 공간, 비건 카페, 칵테일바이기도 하다.

이서점의 책방지기는 박수민(철학·16)씨와 한채원(철학·18)씨다. 한씨는 “무례하지 않으면서 재미를 추구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복합예술공간인 이서점은 시 낭독회, 철학 강연, 라이브 공연과 같은 문화 행사를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박씨는 “서점이라는 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재미 기준으로 행사 기획을 하고 있다”며 “연극과 독서 모임도 기획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행사는 두 책방지기의 ‘사심’에서 시작했다. 서울을 떠나며 그들이 가장 걱정했던 점은 지방에서는 서울만큼 풍부한 문화 예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두 책방지기는 광주로 이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함을 느끼고, “놀 게 없다면 우리가 만들자”라는 생각에 행사 기획을 시작했다.

 

본교 생활도서관에서 시작해 광주에 개업하기까지

두 책방지기는 2018년에 본교 생활도서관에서 만났다. 생활도서관은 학생문화관에 위치한 학생자치도서관으로, 독재 정권 시절 출판 검열과 불온서적 지정에 대항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생활도서관에서 페미니즘, 동물권, 노동을 비롯한 주제로 세미나에 참여한 경험은 이서점의 책방지기로서 인문·사회 서가 책을 선택할 때 도움 됐다. 한씨는 “텍스트를 읽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삶에서 겪는 고통과 사회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웠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사랑이라는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둘은 대학 입학 후 낯선 서울에서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맸다. 생활도서관을 만난 그들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곳에서 일상을 공유했다.

졸업 후에도 일상을 편하고 느슨하게 공유하길 원한 그들은 생활도서관과 같은 공간을 유지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함께 창업을 결심한 박씨와 한씨는 함께 번잡한 서울을 떠나 활동하고자 마음먹었다. 박씨는 이 시기에 대해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며 “무언가 해보고는 싶은데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둘은 창업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창업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서점지기를 비롯한 관련 직종 종사자들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박씨는 “서울이 아니면서도 문화 인프라가 있고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해 서로의 고향은 배제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여러 광역시를 대상으로 자료 조사와 답사를 진행한 후, 창업 직종도 정하지 않은 채 광주로 떠났다. 국제현대미술전시인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는 문화예술의 도시이자 5·18의 도시, 인권 도시 광주라는 슬로건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주된 이유는 “그냥 좋아서”였다. 이주 후 그들은 1년 동안 광주와 친해지며 창업 계획을 구체화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막연히 문화 기획이라는 큰 틀만 가진 둘은 서로에게 “돈이 진짜 많다면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질문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서점을 지목했다. 한씨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많은 일을 펼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업 시작을 약속한 1년이 끝나기 한 달 전, 그들은 서점 개업을 결정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다

둘은 서로를 향해 “장사가 진짜 안 맞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한씨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일들과 부딪힌다”며 “모든 행사를 다 무료로 하고 싶고 책을 사러 와주면 감사한 마음에 그냥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판매하기보다는, 책을 사러 온 손님들과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는 것이 더 적성에 맞는 그들이다.

두 사람이 책을 들이는 기준은 ‘이 책이 과연 세상을 더 살만하게 만드는 이야기인가’다. 박씨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함께 읽자는 마음으로 들여온다”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할 때는 어느 누구도 웃음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점검한다. 한씨는 “기존 문화 행사에서 배제된 사람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서점에서 진행된 김리윤 시인의 ‘슬픔을 깨뜨리며 슬픔을 기억하기’ 시 낭독회에는 김지애 수어 통역사가 함께했다.

이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서점에 오는 사람들에게서 온다. 서점 운영에 대해 한씨는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일을 하니,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점이 어려우면서도 재밌다”라고 말했다. 그의 유일한 숙제는 이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씨는 “내가 선택한 동료와 선택한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학창 시절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서점에서 예측 불가능한 삶을 만났고 예측이 불가하기에 더욱 즐거운 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너무 비장하지 말고 이서점에서 함께 세상 탓을

두 사람이 꿈꾸는 이서점의 모습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이다. 한씨는 “좋은 책이나 공연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일상과 단절된 세계로 초대된다”며 “그 시간은 우리에게 일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서점을 방문한 손님들이 서점에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함으로써 일상을 지켜나갈 힘을 얻길 바란다. 박씨는 “이서점이 편안하면서도 안전한, 그리고 모두가 환대받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씨는 도전을 꿈꾸는 이들이 적당히 비장하길 바랐다. 그는 “요즘은 매일을 도전처럼 살아야 하는 세상이지만 너무 비장하면 지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실패하는 선택이라는 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저도 도전과 열정이라는 키워드와는 먼 사람”이라며 “결과가 어떻든 일단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남으니, 후회나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든 서점에 찾아와 함께 세상을 탓하고 응원을 얻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