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22년도 2학기 '취재보도실습' 수업 수강생들이 기사작성 과제로 제출했던 것으로, 이후 보강 취재해 완성했습니다. 본 기사의 내용은 이대학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중심부에는 다양한 높낮이의 비석 2711개로 구성된 추모공간이 있다. 지난 5월 25일 직접 방문한 이 곳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특히 가이드가 인솔하는 단체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 학생부터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까지, 방문객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6000여 평의 넓은 부지에 지어진 이 공간은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이라는 정식명칭으로 불린다. 2005년 개관이래 매년 약 50만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 방문했다. (https://www.bundesregierung.de/breg-en)

지상에는 글자 하나 없이 추모비들만이 나열되어 있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는 학살된 유대인들의 기록과 나치의 홀로코스트 역사를 시대별로 보여주며 추모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지상의 베를린 추모공간(좌)과 지하 전시실(우). 사진=주은서
지상의 베를린 추모공간(좌)과 지하 전시실(우). 사진=주은서

 

남다른 형태의 추모공간, 글자 없이 침묵하는 이유

“어제 단체 투어를 했는데, 가이드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더군요. 그냥 각자 걸으면서 자율적인 해석을 하라고 했어요.” 미국 보스턴에서 온 유대인 리벤달(Libenthale) 씨가 말했다.

기념관을 건축한 피터 아이센만(Peter Eisenman)은 추모비들이 특정한 주제를 상징하지 않기를 바랐다. 홀로코스트의 범위와 규모를 그 어떤 전통적인 수단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개별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만드는 게 이 공간의 설계 의도다.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다는 미국 LA 출신 페이트리(Patrife) 씨는 “공간의 모습에서 감정이 느껴진다” 며 “건축가가 공간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인상을 주도록 잘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 도보 5분 거리의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 추모공간의 위치 지도. 구글맵 캡처
베를린 추모공간의 위치 지도. 구글맵 캡처

이 추모공간은 베를린 시내 한 가운데에 있다. 베를린의 랜드마크이자 독일 통일 역사를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떨어진 장소다. 또한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대사관들도 기념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현지인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접근성이 뛰어난 터라 전략적인 위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념관측에 따르면, 비석이 세워진 장소는 독일 역사와 관련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61년부터 독일 통일 직전까지, 해당 장소는 국경보안 시설의 일부였다. 동시에 소위 ‘죽음의 띠’라고 불리는 베를린 장벽 바로 동쪽에 위치한 황무지이기도 했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장소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을 건설한 셈이다.

러시아에서 온 유리(Yury) 씨는 추모공간이 도시 밖에 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단체 견학으로 공간을 찾은 베를린 출신 학생 캔(Can) 씨도 “브란덴부르크 문 또한 베를린 역사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곳에 추모공간을 지은 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참사를 기억하려는 독일의 다양한 노력

독일의 추모공간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을 찾은 관광객 총 6명에게 해당 공간이 유대인들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독일인들의 의지가 결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함부르크 길가의 슈톨퍼슈타인. 사진=주은서
함부르크 길가의 슈톨퍼슈타인. 사진=주은서

이 외에도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는 노력의 흔적은 독일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띈다. 이른바 ‘슈톨퍼슈타인’(걸림돌)이라 불리는 가로세로 각각 10㎝ 크기의 동판이 보도 블록 사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9년까지 독일 전역에 설치된 슈톨퍼슈타인의 수는 총 7만5000개다. 동판에는 ‘00년도에 태어난 000이, 00년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처럼 독일의 추모는 특정한 추모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이뤄진다. 인상적인 추모공간부터 도보의 걸림돌까지, 참사를 기억할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 온 모습이다.

주은서(경영·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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