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성, 접근성 있는 참사 추모공간이 필요, 사회적 공감대가 핵심

 

본 기사는 2022년도 2학기 '취재보도실습' 수업 수강생들이 기사작성 과제로 제출했던 것으로, 이후 보강 취재해 완성했습니다. 본 기사의 내용은 이대학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매헌시민의 숲 남측구역에 위치한 삼풍참사위령탑. 사진=주영은
매헌시민의 숲 남측구역에 위치한 삼풍참사위령탑. 사진=주영은

“삼풍참사위령탑? 있는지 몰랐어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시민의 숲에는 1995년 6월 29일 발생,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추모하는 삼풍참사위령탑이 있다. 2022년 11월 20일 직접 방문한 이 추모공간은 찾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매헌 시민의 숲 남측구역의 가장 안쪽 구석, 나무에 가려진 장소에 위치해 있다. 어린이 놀이터 등 편의 시설이 있는 북측구역과 달리 남측구역은 여러 참사를 추모하는 추모비들만으로 구성돼 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아 찾아가기 어렵다. 사진=주영은
삼풍참사위령탑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아 찾아가기 어렵다. 사진=주영은

시민들은 국가가 만든 추모공간을 일상적으로 찾지 않는다. 이유는 우선 추모공간의 열악한 ‘접근성’에 있다. 세월호 사고 추모재단인 4.16재단의 임병광 팀장은 “참사 추모공간이 외진 곳에 있어 교통이 불편하거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고 특별한 날에만 찾는 소외된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유족 단체인 삼풍유족회 총무 최윤주(48)씨는 삼풍참사위령탑에 대해 “그런 구석에 위령탑이 세워 질줄은 몰랐다”며 “KAL기 사고위령탑에 가려져 찾지도 못하는 그런 곳” 이라고 말했다.

 

도보로는 갈 수 없는 성수대교사고희생자 위령비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 사진=주영은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 사진=주영은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는 강변북로와 진출입도로 사이에 있다. 즉, 차도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진출입도로 가운데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 후 추모공간으로 이동하고자 할 경우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도보로 이 추모공간에 가려면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통해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근처에 있는 수도박물관에서 ‘한강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서울숲’으로 향하는 길과 ‘한강공원 가는 길’ 로 각각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서울숲’으로 향하는 길은 네이버 지도가 알려주는 경로이나, 이 길 끝에는 철조망이 있어 더 나아갈 수 없다.

도보로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로 가는 길에 있는 육교에서 바라본 터널의 모습. 사진=주영은
도보로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로 가는 길에 있는 육교에서 바라본 터널의 모습. 사진=주영은

따라서 ‘한강공원 가는 길’을 택해 육교를 건넌 후 한강공원에 도착해야 한다. 그곳에 당도하면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을 걸어 빠져나온 후, 차가 다니는 진출입도로를 따라서 조금 더 걸어야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에 도착할 수 있다. 취재일 기준,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한강공원에 자전거를 타러 자주 온다는 정보훈(32)씨는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가 있는 건 알았지만 가본적은 없다”고 말했다.

 

상징성 있는 해외의 추모공간

한국에서 참사에 대한 사회적 추모는 지속적이지 않다. 참사 이후 희생자를 추모하고 또 다른 참사 발생을 막고자 참사 추모공간이 조성된다. 그런데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참사는 또 일어난다. 일상적 추모가 불가능한 것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해외의 주요 추모공간은 접근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참사를 나타내는 상징성이 돋보이는 형태다.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는 약 1만 9000㎡의 광활한 부지에 지어졌다. 이 공간에는 2711개의 비석 모양 콘크리트 조형물이 다양한 높낮이로 세워져 있는데, 베를린 공식 웹사이트(https://www.berlin.de/)는 추상적인 형태의 기념비를 세운 것은 사람들이 성찰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독일 연방정부 웹사이트(https://www.bundesregierung.de/breg-en)에 따르면 2005년 개관 이후 10년 동안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500만 명이 넘는다. 연평균 46만 명,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이 방문한 셈이다.

독일 홀로코스트 추모비. 사진=주영은
독일 홀로코스트 추모비. 사진=주영은

미국의 9.11테러 추모공원도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당시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건물이 서 있던 자리에는 2010년 두 개의 큰 연못이 조성됐고, 연못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152개의 동판에는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건축가인 미카엘 아라드(Michael Arad)에 따르면 추모공원의 두 연못은 ‘가시화된 부재’를 나타낸다. 물이 연못 중앙으로 흘러가도 연못에 물이 채워지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개관 3개월만에 이곳을 찾은 방문자가 100만 명이 넘었을 정도다.

9.11 테러 추모공원. 사진출처 =9.11 테러 추모공원 웹사이트 (포토그래퍼 JIN S. LEE)
9.11 테러 추모공원. 사진출처 =9.11 테러 추모공원 웹사이트 (포토그래퍼 JIN S. LEE)

해외의 주요 추모공간은 ‘참사를 기억’ 하는 공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구석진 장소에 단 하나의 위령비만 세워져 있는 한국의 참사 추모공간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삼풍참사 유족인 최윤주 총무는 “다른 나라의 추모공간을 보면 너무 부럽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에 세워진 9.11테러 추모공원을 보면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위령탑 바닥이 균열이 생겼었다”며 “국가 차원에서 위령탑의 정기점검과 관리를 해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부는 2022년 전국 기억 문화 공간에 지원하는 예산을 늘렸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만 450만 유로(한화 약 60억 5,000만원)을 추가 지원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추모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한 투자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추모공간 운영 예산도 별도의 관리팀도 없다. 삼풍참사위령탑은 동부공원여가센터 공원운영팀에서 관리한다. 위령탑에 금이 갔을 때도 유가족이 공원 측에 여러 차례 건의한 후에야 보수가 이뤄졌다.

동부공원여가센터 공원운영팀 주무관은 삼풍참사 위령탑 관련 예산에 대한 질문에 “위령탑 보수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원 관리 예산으로 보수를 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위령탑 관리가 항상 이루어지지 않으니 관련 예산을 따로 잡아 놓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신혜란 교수는 “추모공간은 특정한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가 발전해야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교육적인 효과도 가진다”라고 서면 인터뷰에서 밝혔다. 신교수는 “이를 위한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며 추모공간의 모양이 획일화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공감과 지지가 없다면 시작조차 못한다

추모공간의 건립은 시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는 번번이 추모공간 건립을 가로막았다. 추모공간을 혐오시설로 인식해 그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막는 님비현상(NIMBY : Not In My Backyard) 때문이다.

27년 전 삼풍참사 위령탑 설립 당시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 근처에 작은 비석이라도 세우길 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를 피하기 어려웠다. 최윤주 총무는 위령탑 관련 논의가 오고 갔던 당시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참사 현장 바로 옆 삼풍아파트에는 ‘삼풍위령탑 결사 반대’, ‘삼풍아파트 품위 손상’ 이라고 쓰여진 여러 개의 플랜카드가 걸렸다.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는 추모비가 세워지지 못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주영은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는 추모비가 세워지지 못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주영은

이후 서울시가 찾은 위령탑 후보지들도 구의회나 주민들의 설립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위령탑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6km나 떨어진 매헌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이후 참사 현장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추모공원인 4.16 생명안전공원도 님비현상으로 인해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4.16 생명안전공원 부지는 기존 참사 관련 추모공간이 갖추지 못한 접근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공원이 설립될 화랑유원지는 안산 도심 부근이고 희생자들이 다녔던 단원고 인근에 위치한다.

생명안전공원측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추모관 주변에는 ‘들꽃언덕’과 ‘기억의 숲’이 조성된다. 4.16재단 임병광 팀장은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며,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열린 공간”이라며 “편안하게 산책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추모하고 기억하는 활동이 이뤄질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4.16 생명안전공원 조감도. 사진출처=4.16재단
4.16 생명안전공원 조감도. 사진출처=4.16재단

4.16 생명안전공원은 설계공모부터 건설 업체 선정까지 다 마치고 당초 2020년 착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부 안산시민의 반대로 인해 일정이 미뤄졌다. 안산 시민 정모씨(23)는 공원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봤지만 그렇지 않은 의견도 들었다고 전한다. 특히 공원 근처에 살면서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부정적이라고 말한다. 정씨는 “건립 목적이 좋다고 해도 좋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부자(56)씨는 일부 주민이 추모공원의 취지를 이해하지 않은 채 반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 씨는 “반대하는 사람들은 추모공원이 세워지면 ‘세월호 왕국’이 될까 봐 우려하는 것 같다. 어떻게 세월호 왕국이 되겠나. 안산 시민과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답답함을 표현했다. 임병광 팀장 역시 “일부 주민들이 공원 건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공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며 “계속 시민들을 만나 공원에 대해 설명하고 관심 갖도록 홍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만의 추모공간에서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추모공간으로 조성되었던 이태원역 1번출구 앞. 사진=주영은
추모공간으로 조성되었던 이태원역 1번출구 앞. 사진=주영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같은 해 12월 2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임시로 조성된 추모공간은 52일만에 운영을 종료했다. 그 후 공식 추모공간은 정부측과 유족의 입장 차이 때문에 제대로 지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참사 장소 인근 녹사평 역사 내 공간을 제안했지만 유족들은 서울광장을 고수했다. 유족 측은 서울광장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임시로 세웠다.

삼풍참사 유족 최윤주 씨는 “사람들이 추모공간을 많이 알고 찾아주며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대형사고가 나면 어떤 절차로 수습을 해야 하는지 알고 대처하는 행정부처가 없다” 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부자 씨는 안산시 생명공원의 건립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전국에 있는 시민 분들이 찾아와서 성찰하고 생명의 중요성을 알아서 안전 사회로 거듭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라고 밝혔다.

신혜란 교수는 참사를 기억하는 추모공간의 건립은 사회적 합의와 공감을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신교수는 “기억은 종교와 같이 공간을 통해서 살아남는다. 사회에 공감과 인정을 받은 종교는 공간을 생산하면서 살아남고 확장한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로 추모공간을 만들면 참사도 기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영은(커미·18), 하경란(생명·19), 주은서(경영·20)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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