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청년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소녀·소년 가장, 효자·효녀라고 불리며 가려졌을 뿐이다. 연민과 칭찬의 대상이던 이들의 고통이 알려진 건 2021년 대구 청년 간병인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지칭할 단어가 없어 ‘영 케어러’(young carer)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국내에서 ‘가족돌봄청년’이라고 칭한 지는 이제 1년이 좀 넘었다.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가족돌봄청년) 지원법’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을 국회에서 만났다.

‘가족돌봄청년 지원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국회의원.   이자빈 사진기자
‘가족돌봄청년 지원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국회의원. 이자빈 사진기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현재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법적·정책적 인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지원 방안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가족돌봄청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어렵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5월19일 기준 서울시 서대문구와 부산시 연제구 등 10개 지역뿐이다. 서 의원은 “거주 지역에 따라 지원 대상 여부가 달라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국가적 차원의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3월23일 발의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서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돌봄이 무너지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된 집단은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현 체계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돌봄청년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법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가족돌봄청년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 운동을 진행하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자문을 구해 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법안에 반영했다. 4월5일에는 가족돌봄청년들과 함께 법안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법안이 가족돌봄청년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기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22년 2월 발표한 ‘해외 영 케어러 지원 제도와 시사점’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책 대응 수준을 국가별로 1~7단계로 구분했을 때 한국은 7단계 ‘무반응’ 국가 그룹에 속한다. 그는 “가족 한 명이 아프면 한 가정이 무너지고 아이들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돌봄은)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청년들이 지원받도록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제정된 조례나 국회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연령 규정을 각각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이 중 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지원 대상이 되는 연령의 폭이 가장 크다. 해당 법안에선 가족돌봄청년을 ‘고령, 장애, 정신, 신체의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에게 간호·간병, 일상생활 관리 또는 그 밖의 도움을 제공하고 있는 34세 이하의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는 “청년 세대 역시 가족돌봄으로 인해 학업 혹은 근로 병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법적으로 청년으로 규정되는 34세까지는 지원이 꼭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돌봄아동 중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지원 연령에 하한선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역시 보건복지부에서 만13세~34세를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 점에 대해 13세 이하 아동까지 모두 포함되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박정연 본부장은 “초등학생 이하의 아동 중에서도 가족을 돌보는 아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실시하는 실태조사나 지원 대상에서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이 발의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은 가족돌봄청년이 돌봄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금전 및 사회서비스 제공과 지속적인 지원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 5년마다 종합지원계획을 수립하고 3년마다 실태조사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지속적인 지원 체계 마련을 위해선 실태 조사가 필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가족돌봄청년이 돌봄에만 매몰돼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가 간병 및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가족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지 몰라서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교와 의료 시스템의 연계를 고려했다. 국가가 가족돌봄청년을 조기에 발견해 지역사회 차원의 연계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상담·교육 등 다양한 지원을 당사자들의 필요에 맞게 ‘맞춤형 통합서비스’로 제공하도록 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별도의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해 가족돌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청소년·청년에게 가장 적절한 지원 방안을 찾도록 했다.

박 본부장도 가족돌봄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정부는 학교와 의료기관이 가족돌봄청년을 초기에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기관 대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사례를 예로 들었다. 가족돌봄청년과 접점이 있는 기관이 지원 대상자를 유관기관에 연결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돌봄의 무게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로

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3월24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로 회부돼 4월24일 국회(임시회) 제1차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5월19일 기준 복지위의 심사를 받고 있다.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면 복지위외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친 뒤 본회의 최종 의결을 통해 제정된다.

법안 통과 가능성에 대해 서 의원은 “가족돌봄청년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여·야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며 “지원 연령 등 이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원 규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한민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으로서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책무가 있지만, 여전히 가족돌봄청년의 권리를 보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 본부장은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정의, 실태조사, 지원방안 및 전달체계 등을 규정하는 법률과 지원책이 부족함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가족돌봄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책을 강구하도록 계속해서 행동할 계획”이라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21대 국회 임기 내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옹호활동을 이어나가며 법안이 일선 복지현장에서 가족돌봄청년을 위한 세부 지원방안의 근거로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 의원은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가족돌봄청년은 놓치고 있던 영역이었다”며 “법안이 통과돼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지 논의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립이 쉽다고 여겨지는 20·30대 청년들에게도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도록 많은 청년이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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