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ㅣ가족돌봄청년, 어린 나이에 돌봄자로서 가족을 부양하게 된 청년들을 칭하는 단어다. 누군가에겐 단어 자체가 낯설지도 모른다. 여전히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본지는 우리 곁의 가족돌봄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관련 정책을 살펴봤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가정의 달인 5월, 많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기.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돌봄을 받는 나이에 돌봄을 책임지게 된 가족돌봄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른이 돼야 했던 아이들

오전5시30분, 막 해가 떠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 김(사회복지학 석사·23년졸)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상태부터 살핀다. 사지마비로 인해 어깨 아래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계속 누워 있을 수밖에 없어 주기적으로 자세도 바꿔줘야 한다. 소변줄을 비우고 목이 마를까 싶어 물을 한 잔 떠다 준 후엔 출근 준비를 한다. 활동지원사가 도착하면 집을 나선다. 오전8시30분에 출근해 오후5시30분까지 일한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침 일과가 반복된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밤부터는 다시 김씨와 어머니 둘만의 시간이다. 누운 자세를 바꿔주고 소변줄을 비운다.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 빨래 등 밀린 집안일을 한다. 자정까지 계속 어머니를 살피다 잠에 든다. 활동지원사가 오지 않는 일요일은 하루 종일 김씨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사지마비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김씨. 제공=김씨
사지마비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김씨. 제공=김씨

김씨는 11년째 홀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9년, 어머니는 사고로 경추가 손상돼 사지마비 장애 판정을 받았다. 강인하게 홀로 두 아이를 책임졌던 어머니는 약해졌다. 사고 전까지 손톱도 어머니가 잘라줄 정도로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던 김씨는 하루 아침에 관계가 뒤바뀐 상황을 마주했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평일엔 오빠가, 주말엔 김씨가 돌봤다. 김씨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무슨 상황인지조차도 자각하지 못했다”며 “상황이 닥치니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가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뒤로는 생계를 위해 독립한 오빠를 대신해 2012년부터 김씨가 돌봄을 책임지고 있다. 김씨는 어머니가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 국가에서 지원되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한 달에 330시간, 활동지원사가 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씨의 몫이다.

“활동지원사분들 덕분에 제가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거니까 정말 감사해요. 제가 지금 일하는 것도 하루하루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는 늘 불안하다. 활동지원사가 일을 그만두거나 갑작스레 나오지 못하는 등 안정적인 돌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3월 취업한 김씨는 이런 돌발상황이 두렵다.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돌봄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기 어려워서다. “만약 내일 당장 오시는 활동지원사님이 아프시다면 저는 출근을 못 하거든요.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해야 한다면 저는 다 제쳐두고 며칠이고 같이 병원에 있어야 해요. 이런 상황을 어느 직장에서 이해해 주겠어요.” 회사에 어머니의 돌봄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을 알리는 것도 부담이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가족돌봄휴가가 있는데 자녀 돌봄에 대한 휴가였다”며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도 돌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인식조차 반영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직접 돌보며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처음엔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계속되는 돌봄 부담에 그도 지쳐갔다. “5년에서 7년 정도까지는 뿌듯했어요. 그런데 돌봄이 길어지다 보니 내 많은 시간을 쏟아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에 지쳐갔어요.” 어머니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본인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 때론 상심하기도 했다. “오히려 사회로 나왔을 때는 친구들이나 동기들이랑 비교했을 때 경력으로나 경험으로나 한참 부족하니까 그런 점이 힘들었어요.” 시간 부족은 끊임없이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김씨는 “나를 위한 시간이 정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하고 아침저녁으로 어머니를 돌보다 보면 제게 온전히 주어진 시간은 토요일 오후 정도뿐이에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혼자 멍때리는 식의 여유도 갖지 못해요.”

 

전형민씨(왼쪽)와 아버지, 전씨의 동생. 제공=전형민씨
전형민씨(왼쪽)와 아버지, 전씨의 동생. 제공=전형민씨

전형민(38·남)씨는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의 활동가이자 ‘생태적지혜’라는 미디어에 가족돌봄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한 작가다. 2016년부터 아버지를 홀로 돌봤던 가족돌봄청년 당사자이기도 했다. 전씨의 아버지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일하던 중 추락사고로 인해 뇌출혈, 인지장애, 언어장애, 오른쪽 편마비 판정을 받았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어머니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동생은 입대를 앞두고 있어 전씨가 아버지를 책임져야 했다. 입대 이후부터 사고 전까지 혼자 살았던 그는 누군가를 돌보는 행위에 익숙지 않았다. 그는 “연습도 없이 돌봄을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초반에는 아버지가 장애인이 된 상황에 대한 충격이 컸다. 충격과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이나 생각을 해소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돌봄청년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맥락에서 돌봄청년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 어려움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전씨는 “아버지를 돌보며 취업, 연애 등 많은 아쉬움과 갈등 상황을 겪었지만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돌봄을 피하게 되거나 돌봄 자체가 부담되고 사회적인 손실로 치부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는 “돌봄이 무언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실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어요. 돌봄으로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안전망을 만드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전씨는 “아버지를 돌보게 된 뒤부터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었다”며 “가족돌봄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새 직장에 출근한 지 이틀째 되는 날에 아버지의 고관절 사고가 있었다. 그는 “새 직장에서 열의를 다해서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으니 난처했다”며 “눈치 볼 일이 아닌데 눈치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야 시작된 논의, 갈 길 먼 정책

이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여전히 미흡한 정책이 자리한다. 2021년 대구에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보던 22살 청년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버지를 장기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다. 2022년 2월 정부가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고 이후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한 법안과 조례안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은 정책 수립단계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법적 정의나 지원 방향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기관별로 가족돌봄청년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다. 서울시의 경우 가족돌봄청년을 만14세~34세로 정하고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대구시 수성구는 만19세~39세로 연령 기준을 두고 있다.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소득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서울시 강남구는 중위소득 120% 이하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대구시는 100% 이하, 당진시는 90% 이하다. 본인이 가족돌봄청년에 해당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영케어러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오정희 매니저는 “사업 초반에는 영케어러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낮았기에 신청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는 “질병에 대한 기준이나 지원 범위 등을 설정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4월26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13세~34세 4만38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후 가족돌봄청년으로 확인된 8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1.6시간이었으며 돌봄 대상은 할머니가 39.1%로 가장 많았고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22.0%), 할아버지(22.0%)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우울감 유병률, 필요하다고 느끼는 복지서비스 등 가족돌봄청년의 실제적인 삶의 단면을 조사했다.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첫 실태조사지만 전수조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숭의여대 선미정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전수조사가 돼야 해당 청년이 처한 ‘경제적 돌봄’ 혹은 ‘행위적 돌봄’이라는 상황에 따른 대책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별로도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주로 금액에 한도를 두고 예산 소진 시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연세대 최영준 교수(행정학과)는 이에 대해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평했다. 지금처럼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빨리 한 사람이라도 더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계는 여전하다. 그는 “정책은 권리가 돼야 한다”며 “‘예산 소진 시까지’ 식의 선착순 정책은 시혜성 정책이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시작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회성으로 지원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가족돌봄청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현재 민간과 지자체 사업 중심으로 이뤄진 상황에 대해서도 “정책 효과에 대한 근거가 쌓이면 중앙 정책으로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보는 이’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가족돌봄청년 정책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선 가족돌봄청년이라는 하나의 이슈보다 더 확장된 관점에서 고려가 필요하다. 정순둘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슈에 따른 단기적인 관심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며 “지금 있는 제도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해 큰 틀에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 교수 또한 “이슈 자체에 대해 정책을 만들기보다 큰 틀 안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돌봄 자체가 사회적 요구가 됐기에 국가가 이를 수용해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도 이런 맥락에서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장애인 돌봄이나 노인 돌봄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 법안과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가족돌봄청년처럼 주목받지 못한 돌봄도 많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분명히 계속 생겨날 거예요.”

돌봄 대상자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선 교수는 “그동안 돌봄 대상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정책을 돌봄 제공자에게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청년 돌봄자들이 본인의 학업이나 직장에 집중하도록 돕는 정책들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돌봄을 책임지며 간병도 집안일도 처음 배웠다. 전씨도 경험 없이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어려움을 겪었다. 최 교수는 “(청년들이) 돌봄을 받아만 왔지 본인이 준 경험이 많지 않고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공적 지원은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마다 복지관이나 돌봄 재가센터가 대부분 있을 것”이라며 “지자체에서 민관 협약을 통해 가족돌봄청년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는 정책이 “사회적 소비가 아닌 투자”라고 말했다. “돌봄 청년 지원에 비용이 쓰이더라도 나중에 공공부조로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는 거예요. 가족돌봄청년이 직장에서 일하며 세금도 내고 사회에 기여하면 본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좋은 일이죠.”

청년들이 돌봄으로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도록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 교수와 정 교수는 청년 시기에 대한 지원이 특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10대나 20대의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큰 격차로 나타난다”며 “청년기가 중요한 시기인 만큼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이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고 돌봄에만 치중하다 보면 인생을 소모하고 꿈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거죠. 적어도 청년이 자기의 꿈을 위해 기회를 갖고 도약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정순둘 교수)

※ 가족과 개인의 신상이 기사에 자세히 드러나 김씨는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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