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위드 캠퍼스: 나의 코로나19 대학생활 수기 공모전' 3등 수상작

편집자주|비대면 대학생활은 어느덧 과거가 됐다. 그러나 그 시간 겪었던 경험만큼은 그대로 우리의 몸과 기억에 새겨졌다. 이화역사관과 이화미디어센터는 코로나와 함께했던 경험의 의미를 돌아보고 되새겨보자는 의미로 ‘위드 코로나, 위드캠퍼스: 나의 코로나19 대학생활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3월20일부터 4월7일까지 열린 이번 공모전에는 ‘코로나와 대학생활’, ‘코로나학번’, ‘비대면’을 소재로 한 39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수상자는 8명으로 ▲1등 정은영(커미·21) ▲2등 강채원(국교·20), 김민형(휴기바·20) ▲3등 김민지(사교·20) 김수연(사교·22) 김찬영(통계·19) 윤다빈(화학·21) 이보연(뇌인지·20)씨다. 본교 구성원이 코로나19 대학생활의 경험을 나누고 반추하며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찬영(통계·19)
김찬영(통계·19)

재작년 여름, 나는 1년 만에 영화관에 갔다. 2019년에 일주일에 세 번은 영화관에 가던 때엔 영화관은 내게 너무 익숙한 공간이었으나, 그때는 오히려 설렘에 들떠있었다. 오랜만에 어둠 속에서 커다란 화면에 나오는 빛을 보며 몸을 울릴 정도로 공간을 채우는 음향을 들으며, 처음으로 단순히 영화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공간으로 인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날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이것이 온전히 그 공백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면 한편으로 씁쓸해졌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영화로만 공백이 생긴 것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즐기던 나에게 그 1년은 어쩐지 비어있는 시간 같았다. 분명히 수업을 듣고 OTT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아쉬움을 달랜 시간이 있었다. 적어도 괴로움이라든가 그해는 아쉬운 해라든가 하는 감상이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1년, 그리고 다음 1년, 학교에 가지 못하던 2년은 공백이었다.

왜였을까?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봤다. 왜 내가 코로나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이 일종의 공백으로만 남았을까? 그래서 한 발짝 내디뎌 기억에 들어갔다. 그러자 2020년 1학기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보이스톡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재밌게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떠들었고, 그러다 문득 사이버캠퍼스에 들어갔다. 당시 강의를 제때 듣지 않고 미리 틀어놔 출석만 해 나중에 몰아서 듣던 나는 이번에 올라온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과제란에 ‘중간보고서 제출’이라고 적힌 것을 봤다. 그때 가슴이 철렁했다. 학기 초에 중간보고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고, 그 비중이 제법 컸던 것도 떠올랐다. 들어갔더니 기한이 지난 지 이미 5일이 지나있었고, 그래도 제출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세 시간 동안 급하게 써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재수강은 면했고 그걸로 더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 내내, 그리고 대학교 들어와서도 항상 실수는 해도 해야 할 일을 잊은 적은 없었다. 피곤해서 숙제를 덜 해갈 수도 있고, 과제가 힘들어서 부족하게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예 까맣게 잊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나는 그렇게 살았다. 원래의 나와는 달랐다. 미루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나를 원래대로 바꾸는 데에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를 생각하면 나는 어쩐지 빈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내가 썩 나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영화를 좋아하던 내가 영화를 보지 못했고, 수업에 성실히 임하던 내가 게을러졌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던 코로나 블루인가 싶기도 했다. 힘들어진 나는 휴학을 했고, 그동안 알바를 하며 나 자신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년 만에 영화관에 가서 씁쓸했던 이야기나 과제를 뒤늦게 내서 당황했던 이야기나 내가 아닌 듯한 사소한 것들이 나에게 쌓여가 우울함을 일으킨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년 전에 본 기사와 같은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탄소 배출이 줄어든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1년 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관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과제를 뒤늦게 내서 그 뒤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내가 더 내가 아닌 것만 같아서 나를 돌아보며 한층 성장했다.

위기를 덮어버리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나는 우울한 영화에서 말하는 한 줄기 희망 따위를 사랑하는 편이다. 그 시간은 공백 같고, 정확히는 없는 것 취급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날린 시간만 같으니까, 원래는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더 나다울 수 있었던 시간인 것만 같으니까. 그러나 그 시기에 나는 정말 하나도 즐겁지 않고, 날리기만 했고, 행복하지도 않고, 나답지도 않았던가? 나는 오로지 모든 게 끝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허비했던가? 그렇지 않다. 나는 모든 게 끝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결국 나답지 않았던 모습도 나였고, 나였으면 살지 않았을 것만 같았던 삶도 나의 삶이었다.

난 이 생각을 모두 정리하고 그 시기의 나를 채워나갔다. 조금은 부끄러울지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물론, 좋은 기억은 여전히 아니다. 왜 그랬을까 가끔 후회도 하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다뤄볼걸, 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나의 최선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그 시절을 아쉽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다. 내가 그걸 토대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이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나쁜 기억은 생겨날 것이고, 나는 잠깐 공백처럼 여겼다가도 또 이겨내고 돌이키고 내 삶으로 인정하며 내 삶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조금은 뻔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클리셰를 좋아했기 때문에.

 

수상소감

상을 타기보다는 코로나를 지내며 외로움이나 고됨을 이겨내던 방식을 공유하고자 썼던 수기가 학보에 게재된다니 예상하지 못했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코로나 동안 이런저런 고민도 많았고, 그만큼 성장했고, 수기에 다 적지는 못했지만, 제가 예상했던 방식으로 세상이 흘러갔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코로나란 부정적이기만 한가?'라는 생각으로 적은 수기였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쓴 글이었기에 더욱 뜻깊습니다. 그리고 이 공모전으로 저는 또다시 하지 못했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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