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비대면 대학생활은 어느덧 과거가 됐다. 그러나 그 시간 겪었던 경험만큼은 그대로 우리의 몸과 기억에 새겨졌다. 이화역사관과 이화미디어센터는 코로나와 함께했던 경험의 의미를 돌아보고 되새겨보자는 의미로 ‘위드 코로나, 위드캠퍼스: 나의 코로나19 대학생활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3월20일부터 4월7일까지 열린 이번 공모전에는 ‘코로나와 대학생활’, ‘코로나학번’, ‘비대면’을 소재로 한 39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수상자는 8명으로 ▲1등 정은영(커미·21) ▲2등 강채원(국교·20), 김민형(휴기바·20) ▲3등 김민지(사교·20) 김수연(사교·22) 김찬영(통계·19) 윤다빈(화학·21) 이보연(뇌인지·20)씨다. 본교 구성원이 코로나19 대학생활의 경험을 나누고 반추하며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학창 시절 내내 한 자 한 자 써 내려왔던 ‘20대 버킷리스트’를 품에 안고 한껏 설렌 마음으로 이대에 발을 들였던 2022학년도 1학기. 그러나 코로나가 하루하루 날이 지남에 따라 확진자 수를 늘려가며 그 위협감을 더해 나의 부푼 꿈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3월 초에는 같이 밥을 먹었던 친구가 확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발을 동동 구르고 불안에 떨었던 것 같다. 그러다 3월 중순이 되자 기숙사에서 같이 잠을 자는 친구가 확진되었고, 이때부터는 죽는 날을 받아 놓고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처럼 확진될 날을 겸허히 기다리게 되었다.

이맘때쯤 유닛메이트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차피 언젠가 걸릴 거라면 차라리 빨리 걸리고 맘 편하게 다니는 게 승자 아닐까?’ 말하기가 무섭게 3월 말, 나 또한 예외 없이 코로나에 걸렸다. 증상이 너무 심한 날에는 목소리가 문자 그대로 아예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대학영어 강의에서 전체 토론이 예정된 날이라 급하게 교수님께 사이버캠퍼스 쪽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참 웃긴 일들의 연속이었지 싶다.

부산에서 갓 상경한 나에게 서울은 너무 복잡했고, 그 와중에 학교는 더더욱 복잡했다. 선배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를 하며 길을 익히면 참 좋았을 텐데. 학기가 시작되고 코로나가 좀 잦아들고 나서야 선배들과 동기들과 삼삼오오 모일 수 있었던 점이 아쉽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네이버 지도가 친절하게 도보 안내까지 해주었지만 학교 안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네이버가 정문 앞 가미분식이 몇 시에 영업을 시작하고 어느 요일에 문을 닫는지는 속속들이 알고 있을지 몰라도 교내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지름길을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을 때도 서대문 05번 마을버스를 타고 편하게 기숙사로 올 수 있다던데. 북아현 삼거리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오다 보면 보인다는 기숙사 쪽문이 어째서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 길로 내리 걸어 ROTC관을 지나, 산학협력관까지 걸어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이후로는 서대문 어쩌고 버스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주말에는 강제 방콕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좀 흘러 1학기의 절반이 다 지난 후에, 선배를 만나면서 드디어 이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위드코로나 국면에 힘입어 우리 과에서는 ‘뻔선뻔후’ 사업을 진행했었다. 뻔선뻔후란, 학번 끝 두 자리가 같은 선후배를 묶어 후배가 과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업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 뻔선에게 이 ‘썰’을 들려주자, 선배는 한참을 웃다가 이내 안쓰러운 목소리로 내게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비로소 일요일에도 두려움 없이 외출할 수 있었다.

언제나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는 법. 이런 고충이 있는가 하면 나는 비대면 학기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도 했다. 학기 도중에 우리 가족 중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생겨 급하게 본가에 갔다 와야 할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워낙 정신없이 허둥지둥하다 보니 일정을 살펴볼 여력조차 없이 내려갔다. 그런데 일이 좀 마무리가 된 후 시간표를 들여다보니. 맙소사, 다음날 첫 수업이 2교시였다. 이미 KTX 막차 시간은 지났고 다음 날 첫차를 탄다고 해도 지각하지 않고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뭐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방법은 자체 휴강, 혹은 KTX에서 수업 듣기뿐이었다.

나는 비대면 강의 특수를 누려 후자를 선택했고 9시 반, 서울로 향하는 KTX 안에서 사이버캠퍼스에 접속해 줌 링크를 열었다. 카메라는 딱 내 얼굴만 보이게끔 각도 조절 필수. 마이크는 기차 소음이 들리지 않게끔 음소거 필수. 옆 좌석 아주머니가 나와 내 노트북 화면을 자꾸만 힐끔힐끔 쳐다보시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수업이 경제학 수업이라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난해해 보였을 것이다. 기차에서도 공부하는 엘리트 학생으로 보였으려나? 실상은 ‘자휴(자체휴강)’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털털이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대학에 가면 하고자 꿈꿔왔던 일들을 실현하지 못한 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들이야 지금부터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고, 코로나 학번인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희귀하고 값진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언제나 무슨 일이든 척척박사처럼 잘 해내실 것 같았던 교수님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아 만드시는 자잘한 실수들? 거기에 배시시 새어 나오는 우리의 웃음소리들. 그러면서 드는 ‘교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들. 그렇게 우리와 교수님 간의 간극이 조금이나마 메워지지 않았을까? 또, 강의실에서는 늘 서 계시는 교수님과 앉아있는 우리 간에 눈높이의 차이가 존재했지만, 줌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거기서 교수님과 우리 간 수직적 권력관계에 대한 재설정을 내면화할 수 있진 않았을까?

벗들이 비대면 학기에 즐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코로나 시국을 지나오는 동안 배운 것들을 대면 학기에도 잘 적용할 수 있는 이화인들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김수연(사교·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