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더 글로리(2022)

출처=넷플릭스(NETFLIX)
출처=넷플릭스(NETFLIX)

“난 왕자님은 필요 없어요. 난 왕자가 아니라 나랑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거든요.” 누구보다 순수해 보이는 눈빛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에게, 주인공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주 오랜만에 짓는 진심 어린 웃음과 함께. 김은숙의 세계를 향유해 봤던 이라면 누구나 이 대목에서 움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왕자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여주인공이라니.

과연 ‘더 글로리’는 어디를 향해 내달리는 이야기일까. 이 작품의 무엇이 무너지는 김은숙 월드의 진부함을 뒤엎고 신선함을 겸비한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했을까. 가장 큰 차별성은 바로 작품 속 여성 캐릭터가 표상하는 여성성의 변화에 있다.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랑을 찾아 평생을 헤매지 않는다. 대신 어제보다 나은 삶, 살고 싶은 내일을 꿈꾸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렇다면 이들이 ‘변화’라는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이제까지의 주인공이라면, 그 계기는 다름 아닌 완벽한 남자 주인공의 등장일 것이다. 김은숙은 언제나 슬프지만 꿋꿋한 주인공과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러나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왕자님이 나오는 뻔하지만, 매력적인 세계를 그려왔다. ‘파리의 연인’(2004)부터 이어져 온 김은숙의 세계는 ‘상속자들’(2013)을 거쳐 ‘도깨비’(2016)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세계관을 재료로 성공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더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구원받는 판타지 속 주인공을 욕망하지 않았고 야심차게 말을 타고 내달렸던 ‘더 킹: 영원의 군주’(2020) 속 백마 탄 임금님은 결국 누구의 욕망도 충족하지 못한 채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작년 12월, ‘더 글로리’는 자기 삶에 대해 욕망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극의 흐름을 선보였다. 영혼까지 망가뜨린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향한 철저한 사적 복수를 계획하는 ‘동은’,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다짐하는 ‘현남’으로 대표되는 변화이다. 특히 염혜란 배우가 연기한 ‘현남’ 캐릭터의 변신은 그 무엇보다도 두드러진다. 자신을 사건의 ‘피해자’라는 좁은 렌즈를 통해 한정적으로 표상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녀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일상의 사소함에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행복을 욕망한다. 동시에 자신의 기쁨이 되어주었던 아이의 삶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다.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비틀어진 클리셰는 익숙함을 바탕으로 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시청자와 함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선 작품 속 인물과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영원히 꿈꿀 수 있는 즐거움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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