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 공동 전시회 ‘CO-DRAW’는 코드로 그린 디지털 그림을 로봇이 그린 물리적 그림으로 확장시켰다. 사진은 머니퓰레이터형 로봇이 유리 구슬 위에 그린 작품 ‘완성’.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미디어 아트 공동 전시회 ‘CO-DRAW’는 코드로 그린 디지털 그림을 로봇이 그린 물리적 그림으로 확장시켰다. 사진은 머니퓰레이터형 로봇이 유리 구슬 위에 그린 작품 ‘완성’. 권아영 사진기자

‘예술과 과학’, ‘가상과 실재’ 그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페블러스(pebblous)의 이주행 대표와 송다은(컴퓨터공학 박사·23년졸) 박사후연구원이다. 두 공학 박사의 ‘로봇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 공동 전시회’가 조형예술관A동 2층 이화아트센터에서 9일~13일 진행됐다.

첫째 날 찾아간 전시장 곳곳에는 작품을 그리거나 만드는 데 이용된 로봇이 전시됐다. 로봇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존재를 넘어 엄연한 창작 도구로서 작품과 공존하고 있었다. 

 

디지털 그림이 물리적 그림으로,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허물다

23년간 근무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휴직하고 페블러스를 창업한 이 대표는 코드(code)로 그림을 그리는 ‘코드 페인터’이기도 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한 특별한 글이라고 할 수 있는 코드는 사람의 생각을 컴퓨터에 전달한다. 이 대표는 코드를 입력하고 컴퓨터가 출력하는 이미지를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컴퓨터 공학자로서 디지털 그림의 수학적 원리를 연구하고 코딩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이주행 대표.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컴퓨터 공학자로서 디지털 그림의 수학적 원리를 연구하고 코딩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이주행 대표. 권아영 사진기자

이 대표는 코드를 이용해 ‘키넥셀 문’(kinexel moon)이라는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해당 작품은 디지털 화면을 구성하는 선분 키넥셀로 그린 그림이다. 이 대표는 2015년 화면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픽셀(pixel)에서 영감을 받아 키넥셀이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그는 코드를 통해 두 점을 연결하는 무수히 많은 선분을 만들어냈고 이를 다양한 질감으로 중첩해 원형을 표현했다. 

디지털 프로그램에서는 코드만 입력하면 굵기, 길이, 색깔, 투명도가 다양한 키넥셀을 만들 수 있지만 로봇에게 이를 그리게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로봇은 인간이 그림을 그리듯이 하나의 펜을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펜으로 그림을 그리면 디지털 프로그램과 달리 일정한 특성의 선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 제약이 생긴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기술이 바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로봇에 더 친화적으로 작용하는 드로잉 기법이다. 

“어떻게 하면 일정한 선으로도 중첩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소파에 앉아서 한참 고민했어요. 문득 한 방법이 떠올랐죠.”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빈도를 조정해 선분의 간격을 촘촘하게 만들었다. 선분의 특성을 다양하게 설정하지 않아도 중첩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이를 통해 “로봇이 가진 물리적 제약 조건에 맞춘 키넥셀 기법도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디지털상에만 존재하던 키넥셀이 종이에 그려졌을 때 훌륭한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도 새로웠다”고 전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송다은 박사는 ‘로보틱 드로잉’을 선보였다.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송다은 박사는 ‘로보틱 드로잉’을 선보였다. 권아영 사진기자

송 박사는 본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 통합과정을 거친 국내 몇 없는 컴퓨터 공학 기반의 여성 로봇공학자다. 그는 박사 과정 중 로봇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경로를 계획하고 동작을 제어하는 ‘로보틱 드로잉 시스템(Robotic Drawing System)’을 연구했다. 이 대표와는 박사 논문 심사를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로보틱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전문가였던 이 대표가 송 박사의 논문 심사를 맡으면서 관련 연구를 적용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전시 제목인 ‘CO-DRAW’는 ‘코드, 그리고 로봇과 함께 그린다’는 의미다. 송 박사는 “코드로 그린 디지털 그림이 로봇으로 그린 물리적 그림으로 확장되는 실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전시의 의도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던 혼란과 마침내 디지털 그림을 물리적 그림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순간을 작품의 각 주제를 통해 나타냈다.

이주행 대표의 ‘코드로 그린 그림’과 송다은 박사의 ‘로봇으로 그린 그림’은  가상과 현실의 통합을 선보였다. 사진은 벽면을 이동하며 그림을 그리는 머니퓰레이터형 로봇을 조작 중인 송다은 박사.   <strong>권아영 사진기자
이주행 대표의 ‘코드로 그린 그림’과 송다은 박사의 ‘로봇으로 그린 그림’은 가상과 현실의 통합을 선보였다. 사진은 벽면을 이동하며 그림을 그리는 머니퓰레이터형 로봇을 조작 중인 송다은 박사. 권아영 사진기자

송 박사는 가장 의미 있었던 작품으로 ‘실천’을 꼽았다. ‘실천’은 전시 기간 ◆모바일 로봇과 ◆머니퓰레이터형 로봇을 통해 넓은 벽을 한 면씩 채워나가는 특별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는 “박사 학위 과정 동안 연구해 왔던 임의의 곡면에 그림을 그리는 기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로봇에 의해 그려지는 선의 두께, 길이, 중첩의 정도를 고민하며 이 대표와 수많은 데이터를 실험하고 선별했다. 이 대표도 “함께 고민하고 실험한 과정이 가장 많았다는 점에서 전시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로 실험하고 충분한 확신이 드는 순간에 송 박사님께 그림을 보여드려요. 그때부터 상의가 시작되는 거죠.” 디지털 실험은 1초도 걸리지 않지만 로보틱 드로잉을 구현하기 위한 논의는 6시간까지도 소요됐다.

 

과학과 코드는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가치 있는 이유는 뭘까. 송 박사는 “과학을 쉽고 재밌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저에게는 과학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과학을 이제는 대중에게도 전하게 됐다.

이 대표는 “코드로 그린 그림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동기부여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학적인 의미의 코드 작업인지, 혹은 전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호기심인지에 따라 코드는 연구물이 되기도,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코드는 물감, 붓, 캔버스와 같이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시도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창조하고, 작품으로 완성할 것을 선택해 대중에게 설명하는 과정까지. 이 대표의 작품 과정에는 여타 예술처럼 인간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코드가 그린 그림’이 아닌 ‘코드로 그린 그림’인 이유다. 

송 박사에게 이번 전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로보틱 드로잉 시스템을 연구해왔지만 예술적 그림을 그리는 시스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7월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기존에 로봇 팔 위주의 연구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다리나 바퀴가 달린 로봇의 주행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이 대표는 연구 결과 발표를 위한 그림 자료를 프로그램 언어로 직접 그려왔다. 빠르게 떠오른 것을 스케치해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의 편리성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상상과 마음을 담은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공부를 하다 공책 한 구석에 낙서를 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코드로 그린 그림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나 사업가가 되리라 예상해본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진정성 있는 도전이 쌓이다 보면 그 메시지가 퍼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바일 로봇: 스스로의 제어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로봇

◆머니퓰레이터: 인간의 팔과 유사한 동작을 하는 로봇의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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