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지 않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회사가 있다. 햇수로 5년째, 기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는 기록 콘텐츠 전문기업 ‘미닝오브’다. 은평구에 위치한 미닝오브 사무실 문 앞에 서자 장은진(중문·15년졸) 대표와 정경희(방영·18년졸) 대표의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음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토의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동안의 기록물이 빼곡히 꽂힌 책장과 커다란 칠판에 월별로 정리된 일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은진 대표(왼쪽)와 정경희 대표는 은평구의 작은 한 사무실에서 세상이 아직 주목하지 못한 삶들을 기록하고 있다.  박성빈 사진기자
장은진 대표(왼쪽)와 정경희 대표는 은평구의 작은 한 사무실에서 세상이 아직 주목하지 못한 삶들을 기록하고 있다. 박성빈 사진기자

 

짧은 만남이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까지

두 사람은 자서전 작업을 계기로 ‘기록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자서전 대필작가였던 장씨는 당시 다큐멘터리를 찍던 정씨에게 함께 인터뷰하러 다닐 것을 제안했다. 처음엔 그저 일로 인터뷰이의 말을 받아 적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의 중요성과 그 안에 담긴 진지한 이야기에 매료됐다.

“우린 영상을 다룰 수 있잖아요. 글뿐만 아니라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뭐든 더 잘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2019년 기록 전문 콘텐츠 기업 미닝오브를 창업했다. 미닝오브는 지금까지 영상, 출판, 전시 등 다양한 방식의 기록을 제안하고 있다.

처음으로 시도한 아이템은 영상 자서전이었다. 주로 딸이 어머니의 자서전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영화처럼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장씨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찍을 게 뭐가 있냐는 말씀을되게 많이 하신다”며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 있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어르신들은 남편과의 사별 등 엄청난 일을 겪고도 ‘슬펐지, 뭐’ 이런 반응이세요. 그땐 그렇게 버티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정씨)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남편분이 꿈에 나오신 적 있으세요?’처럼 감정보다는 일화를 물으며 어르신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자서전 제작을 위한 세 번의 인터뷰 중 마지막 만남에서야 마음을 여시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작업의 한계를 느꼈다. 장씨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마지막을 정해놓지 않고 엔딩이 나왔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오랜 기간이고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하는데 한정된 시간 안에 그분들의 삶을 다 기록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기록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무렵, 어르신들의 삶을 콘텐츠로 만드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협업 의뢰가 들어왔다. 그렇게 미닝오브의 작업은 인물에서부터 지역, 공동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안다고 생각하면 문은 닫힌다

‘안다고 생각하면 문은 닫힌다’, 미닝오브의 기업 비전이다. 기록하는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사소한 부분까지 본연의 고유함을 잘 담아냈을 때 기록의 가치와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미닝오브만의 색깔을 입히기 위해 협업 요청이 오면 기획 단계에서부터 클라이언트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영등포문화재단과 함께했던 ‘당신의, 영감의 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기획은 작가 세 명의 이야기를 세 개의 인터뷰 영상으로 담는 평범한 구성이었다. 미닝오브에서 작가의 영감이 담긴 ‘영감의 방’을 제작해 그동안의 작업과 이야기를 담는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자는 의견을 새롭게 제안했다. 재단은 예산까지 늘리며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시즌2까지 이어지며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성공적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다.

2021년 서울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인 ‘종로의 풍경들’ 역시 미닝오브에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평소 어르신들과 작업을 해왔기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연락이 오자마자 의욕이 앞섰다. 종로의 풍경과 세월이 담긴 어르신들의 사진을 콜라주로 작업하며 어르신들의 기억 발자취를 따라가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여섯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고 어르신들이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다.

“프로젝트를 담은 전시에서 한 어르신이 본인 인터뷰 영상을 보시고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다시 기다리시더라고요. 인터뷰 영상을 보고 또 보시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불현듯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들면서 참 뿌듯했어요.” (정씨)

미닝오브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협업 콜라주 작품인 ‘종로의 풍경들’ 에 참여하신 한 어르신의 작품. 박성빈 사진기자
미닝오브와 서울노인복지센터의 협업 콜라주 작품인 ‘종로의 풍경들’ 에 참여하신 한 어르신의 작품. 박성빈 사진기자

 

목적어를 비워둔 미닝오브만의 기록

세상엔 수많은 기록이 있다. 두 사람이 방송이나 영화 일에 몸담으며 겪은 기록에는 목적이 있었다. 정씨는 “그동안의 기록엔 그 사람을 경유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주입된 목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피로가 쌓였다”고 말했다.

미닝오브는 그 틀에서 벗어나 기록의 목적어를 없앤다. 아무것도 미리 상정하지 않고 물음표만 가진 채 작업을 시작한다. 정씨는 “의뢰받았을 때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빈칸으로 남겨둔 채 시작하는 게 참 재밌다”고 말했다.

미닝오브의 다양성이 담긴 작업에 ‘장하다’, ‘착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때론 이것이 부담되기도 한다. 장씨는 “기록물 자체에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문제적으로 읽히거나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부담을 느끼고 상처받아 일을 그만둘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장씨는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도 개인의 역사가 생각지도 못하게 타인을 괴롭게 하는 일을 목격했다”며 “기록의 행위에 대해 큰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착한 일’이 아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여전히 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성이 너무 부족한 현실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좋고 나쁨을 떠나 ‘그다음’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미닝오브는 기록 작업이 지속 가능한 가치있는 일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고 있다. 콘텐츠마다 독창적인 제목을 붙여 온 두 대표에게 만약 미닝오브를 주제로 한 기록물이 있다면 제목이 무엇일지 물었다. '해볼 만큼 해봤다’, ‘저렇게도 산다’라는 농담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 두 문장에서 다양한 삶을 기록하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미닝오브만의 철학이 느껴졌다. 앞으로 미닝오브가 써내려 갈 기록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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