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 이대에 왔어요?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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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5년 차인 ㄱ씨가 <대학영어> 수업에서 교수로부터 들은 말이다. 본교 20학번으로 재학 중인 ㄱ씨는 북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2019년 남한에 정착했다. 남한에 온 직후 대안학교의 도움을 받아 약 1년간 대입을 준비했다.

힘겨운 여정이었다. 남한 학생들이 10년 넘게 공부한 내용을 단 1년 동안 압축해서 배워야 했다. 오후7시부터 자정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에 주로 새벽에 공부 했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추천해주신 책을 봐도 문맥과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계속 보면 이해가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어요.” ‘노력은 배 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이듬해 ㄱ씨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본교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의 기쁨도 잠시, ㄱ씨는 영어라는 큰 산을 마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 체류하다가 한국에 오면 영어를 다 잊어버려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보면 됩니다.” 기초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ㄱ씨에게 영어로 된 장문의 글을 읽고 토론해야 하는 수업은 고역이었다. “교수님들이 영어 자료를 활용하시는데 세부 적인 내용은 설명해 주시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어렵게 본교에 입학한 ㄱ씨에게 ‘어떻게 이런 영어 실력으로 입학했냐’는 한 마디는 상처로 남았다.

영어 강의를 제외하고도 장벽은 많았다. 외래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남한의 언어 때문에 강의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녹화강의가 ㄱ씨에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문법도 다르니까 1시간짜리 영상을 한 번 보는데 3시간이 걸렸어요.”

입학 후 1년간은 ‘오픈북 시험’이 뭔지도 모를 정도였다. “교수님이 오픈북인데 시간이 왜 부족하냐고 하셨어요.”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왜 책을 보지 않냐고 말해줘서 알게 됐다. “북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거든요. 내가 필기한 것을 보고 쓸 거면 시험을 왜 보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남북한의 언어 체계가 달라졌다. <통합적사고와글쓰기> 수업에서 ㄱ씨는 북한에서 배운 문법대로 글을 작성했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겨우 넘은 ㄱ씨는 문법 오류 검사기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배운 대로 썼는데 예전에 사용하던 문법이라며 교수님이 빨간 줄을 막 그으셨어요.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로 좌절의 연속이었던 첫 학기를 보내고 성적표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나름 잘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성적표에는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점수가 적혀 있었어요. 눈물이 났죠.”

아주대에 재학 중인 탈북 4년 차 ㄴ씨(전자공학·21)에게도 영어는 학업의 걸림돌이다. “모르는 표현이나 문법을 동기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중학교 때 배우는 건데 왜 모르냐’고 할까 봐 그만둬요.” 전공 특성상 교재는 대부분 영어 원서다. 원서만으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항상 번역본까지 두 권을 구매한다. 두 권을 대조하며 암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학습의 어려움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3월 기준 본교에 재학 중인 북한이탈주민 학생은 53명이다. 2022년 한국웰니스학회지에 등재된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탈북 대학생의 중도 탈락률은 남한 대학생에 비해 4년제 대학에서는 평균 75.3% 높았고 전문대에서는 74.6% 높았다. 중도 탈락한 이유로는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워서’의 비율이 28.1%로 가장 높았다.

남북하나재단 연구원 장인숙 교수(북한학과)는 “(탈북 대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대한 충분한 적응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대학부터 진학하는 경우, 기초학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력 중심의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대학에 진학하지만,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어 중도 탈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ㄱ씨는 우여곡절 많았던 대학 생활을 거쳐 올해 졸업종합시험을 앞두고 있다. “입학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까워서 그만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들도 다 하는데 포기하는 게 어딨어’라고 생각하며 오기로 버텼습니다.”

탈북 대학생으로 이뤄진 교내 동아리 ‘어깨동무’가 그의 버팀목이었다. “북한에서 온 학생들은 탈북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살에 입학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기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 먼저 입학한 동아리 선배들과 교류하고 학교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선배들은 시간표 짜는 방법이나 졸업 요건, 학교 시설 등 다방면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동아리 안에서만큼은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ㄱ씨는 후배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됐다. “후배로 입학한 탈북 학생들이 나만큼 어려움을 겪거나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먼 길을 돌아왔기에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배가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수강 신청을 해주기도 한다.

ㄱ씨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며 “과거에 겪은 어려움이 디딤돌이 돼 타인의 아픔에 더 잘 공감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평범한 삶에 감사하며 더 단단한 자아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 대학생과는 다른 경험을 한 만큼 일상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북한 사람을 외국인처럼 보지 말고 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ㄴ씨는 학생들이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 부산 사투리를 사용하듯, 북한이 고향인 같은 민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탈북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반 학생임을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탈북민임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고,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학교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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