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

출처=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출처=더 퍼스트 슬램덩크 예고편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의 인기가 뜨겁다. 6년동안 ‘너의 이름은’(2016)이 지키고 있던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누적 관객수 1등을 차지했으며, 슬램덩크를 본다는 뜻인 ‘농놀’이 새로운 유행어가 됐을 정도이다. 캐릭터 개개인의 스토리와 매력, 섬세한 작화, 실제 농구를 보는 듯한 긴박함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인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감동적인 대사에 있다.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종료됩니다”, “나는 지금이라고!” 등 슬램덩크의 명대사들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중에서도 오늘 다룰 명대사는 “나는 초짜니까”다. 주인공이자 북산고의 신입부원인 강백호의 대사다.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 문외한이지만, 농구를 좋아하는 채소연의 권유를 받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구를 시작하게 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에서 그려졌듯, 강백호는 다른 부원과 상대 팀원들에게 ‘슛이 부족하다’, ‘농구를 한 지 얼마 안 된 초짜다’라는 신랄한 평가를 받아도 기죽지 않다. 강백호는 “내가 초짜여서 부족하구나”라고 쿨하게 인정한다. 오히려 당당하게 상대편을 향해 “네 놈들의 잘난 농구 상식은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며, 모든 이를 당황시켰다. “나는 초짜니까!”

몇 년 전부터 ‘회피형 인간’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에서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 본래 사람이 가지는 애착 성향을 구분하는 말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요즘은 무언가를 책임지기 싫어 외면하는 사람에 이어 어려운 일 등을 시작하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으로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거나, 무서워서 회피해버리는 범주 안에 들어가면 회피형의 유형에 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자주 쓰인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수많은 회피의 의미 중에서도 어려운 일을 시작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어려운 일을 시작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것은 그 일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도 있지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주된 이유일 것이다. 한국에서 실수는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공동체의 일 안에서 실수는 흔히 민폐로 이어지고, 개인의 일 안에서는 실패로 자리잡기도 한다. 특히 눈치와 민폐에 예민하고, 나이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실수는 우리 안에서 ‘민폐를 끼치는 것’ 혹은 ‘시간 낭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처음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실수는 나오기 마련이다. 실수는 교훈을 남긴다. 어떤 삶을 살든 우리 모두는 초짜의 과정을 겪게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초짜로 시작하는 것이 두려울 누군가에게 슬램덩크는 강백호를 보라 한다. 물론 강백호는 뛰어난 점프력 등 재능이 출중한 소년이다. 그러나, 슬램덩크에 나오는 많은 농구선수가 주인공보다 뛰어나거나 재능 있다고 묘사된다. 가령 고등학생 레벨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라이벌 서태웅이나, 고등학생 농구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룬 정우성이 있지 않은가?

뛰어난 라이벌들을 보며 강백호는 자신의 서투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되려 당당하다 못해 자신에게는 너희들의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보이기까지 한다. 초짜가 되는 것이 두렵고, 능숙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강백호는 기죽지 말라고 말한다. 누구나 겪어야 하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초보자의 모습이 설령 지금은 힘들고 견딜 수 없게 느껴져도, 우리 모두는 초짜로 시작하고, 언제든지 초짜가 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과 고수들 또한 서투르고 어리숙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슬램덩크는 초짜가 취해야 할 자세뿐 아니라, 초보자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자세를 제시하기도 한다. 북산고의 주장 채치수는 강백호의 행동과 태도를 혼낼 뿐, 그가 초짜라는 이유로 면박을 주지 않는다. 이는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강백호를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말해줄지언정, 강백호의 실수를 탓하지 않는다. 이러한 포용적인 자세는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수성에서 기인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시작하는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다그치거나 조롱하지 않고, 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과정이 당사자가 실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북산이라는 팀의 모습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다.

대학교는 초짜로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가 ‘초짜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당장의 도전과 시작이 두려울 때마다, 강백호의 대사를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금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초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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