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 정문 앞. 우이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늘어섰다. 경찰들이 덕성여대 정문과 다리 주변을 에워쌌다. 빨간 조끼를 입은 공공운수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바리케이드 안에 나란히 앉아 구호를 외쳤다. "진짜 사장 총장님이 생활임금 보장하라!"

덕성여대의 2022년도 임금 협상이 청소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인 학교의 거부로 1년간 이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공공서비스지부는 덕성여대와 본교를 포함한 13개 대학 사업장의 16개 용역업체와 집단 임금 교섭을 진행하며 440원 인상을 요구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위한 시위를 진행했다. 덕성여대 측이 이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며 12개 대학의 임금 인상이 불확실해졌다. 이자빈 사진기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위한 시위를 진행했다. 덕성여대 측이 이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며 12개 대학의 임금 인상이 불확실해졌다. 이자빈 사진기자

학내노동자들은 대부분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돼 일한다. 원청인 대학이 중간 업자인 용역회사와 공급 계약을 맺고, 용역회사와 노동자들이 고용 계약을 맺는다. 여러 대학의 노동 조건을 동일하게 맞춰 기본적인 노동 환경을 마련하고, 개별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환경 악화를 막는 것이 집단교섭의 목적이다. 그러나 집단교섭 중 덕성여대가 대화를 거부하면서 임금 인상에 이미 합의한 12개 대학들의  ◆소급분 지급이 불확실해졌다.

 

1년째 시위 중...진전 없는 임금 협상

“원래는 집단교섭 13개 대학 중 1등 아니면 2등으로 합의했어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분회 부지부장 한원순씨는 “전임 총장 때는 일주일이면 합의가 끝났다”며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덕성여대 청소 노동자들은 2022년 3월부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 중이다. 이들은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2022년 10월4일 수시모집 실기고사를 기점으로 파업하며 농성장을 차렸다. 

2022년 11월 덕성여대는 “2026년까지 정년퇴직으로 청소노동자가 12명으로 줄면 더 이상 충원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시급 400원 인상에 합의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인원이 줄어드는 대신 교수 연구실 및 실험실은 청소 구역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는 덕성여대 측이 제시한 합의안에 대해 “학교가 (임금 인상을) ‘한다’가 아니라 (노조와) ‘협의한다’로 태도를 바꿀 것”과 “정년을 맞아 자연적으로 인원이 줄 때마다 다시 협의할 것”을 주장했지만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청소노동자들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씨는 “선전과 농성에 학교가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 같지만 대화를 하자는 등 실질적인 대응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2월22일 오후3시,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 정문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2월22일 오후3시,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캠퍼스 정문 앞에서 공공운수노동조합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 모두에게 상처로

“진짜 사장 덕성여대가 생활임금 보장하라!” vs “단편적이고 기울어진 정보로 선동하지 말아달라”

덕성여대 학생회관에는 학내노동자들의 대자보와 그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경쟁하듯 붙었다. 공공운수노조 덕성여대분회 윤경숙 분회장은 대자보에서 “우리 청소노동자들도 덕성여대의 구성원”이라며 학생들에게 연대를 요청했다. 

한편 덕성여대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학교는 최저시급보다 230원 많은 시급을 지급하고 있고, 시급 400원을 인상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86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전에서 사용하는 공격적인 발언을 비판하고 시위로 인해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덕성여대 교내에 부착된 대자보의 모습. 정예은 기자
덕성여대 교내에 부착된 대자보의 모습. 정예은 기자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도 있다. “임금의 최종 결정권자가 덕성여대 총장인데 왜 덕성여대가 사용자가 아닙니까? 4년 후의 청소노동자 인원까지 직접 지정하겠다는 덕성여대가 왜 사용자가 아닙니까?”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식지에 따르면 1월26일 열린 집회에서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덕성여대지부에서 활동하는 이미건씨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덕성여대 민주동문회 남영아씨는 2월22일 열린 집회에서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고 다시 일터에서 마음 놓고 일하실 수 있도록 저희 동문들도 열심히 연대하고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학생들이 ‘우리를 무기 삼지 말라’는 쪽지를 붙이는데 속상해서 잘 안 읽는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학생들의 참여가 더 있으면 좋겠어요. 용기 있게 나서줬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100일 넘긴 농성

덕성여대가 청소노동자들과의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자 청소노동자들은 총장 사무실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농성은 100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새벽부터 일을 하고 낮에도 밤에도 이곳에서 기다립니다."

농성 기간을 알리는 패널에는 142일(2월22일 기준)이라는 숫자와 청소노동자들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오랜 농성에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씨는 “졸업식과 입학식이 있었던 주에 교내에 붙여진 벽보나 플래카드를 다 떼고 대화를 유도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덕성여대는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덕성여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2월21일, 청소노동자들은 임금 협상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모두 철수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 이후, 총무처에서는 총장과 청소노동자들의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입학식 날 시위를 진행하지 않고 대화 자리에는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를 제외한 청소노동자 대표만 참석하는 조건이었다. 

총장과의 대화는 24일 이뤄졌다. 이날 청소노동자들은 “인원을 감축하되 올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안으로 제시하는 임금 안은 바로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집단 교섭을 통한 임금 협상은 매년 이뤄지므로 2023년도의 임금을 현재 논의 중인 2022년도 임금 협상에서 바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덕성여대 측에서는 교수, 학생, 교직원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조직해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본지는 덕성여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처 총무과에 연락을 취했으나 “대외기사에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는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길어지는 집단교섭, 본교에도 영향 줄까

본교와 공공운수노조 이화여대분회는 2022년 8월 임금 인상에 합의했으나 인상된 임금의 소급분은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본교는 올해 2월23일, 소급분을 10일에 모두 지급하고 2월 임금부터는 인상된 임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본교 청소노동자들의 인원이나 근무 시간 감축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집단교섭의 특성상 덕성여대의 협상 지연은 본교와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공공운수노조 이화여대분회 양미자 분회장은 “지금 당장 영향받는 것은 없지만 올해 임금 인상 등 앞으로의 교섭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길어지는 협상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마음에도 짐이 생겼다. 한씨는 “일부 대학에서 작년에 이미 잠정 합의가 됐음에도 덕성여대의 합의가 끝나지 않아 (인상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집단 교섭을 흔들기도 했다”며 “(덕성여대분회가) 집단 교섭에서 민폐를 끼치는 당사자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도서관 옥상에서 학교를 내려다보니 노조의 현수막으로 도배돼 있어 마음이 아팠어요. 학생들한테 이런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닌데, 학생들에게 피해를 줘서 미안했죠. 하루빨리 이 싸움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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