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서 10년의 근무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떠나는 두 명의 퇴임 직원이 있다. 매일 오전 학생문화관(학문관) 체력단련실의 청결을 책임지던 최정윤(29·여)씨와 매일 오후 중앙도서관에서 반납 도서를 정리하고 분류하던 박병현(37·남)씨다. 발달장애를 가진 두 사람과 본교의 인연은 본교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에서 발달장애인 지역사회생활 아카데미, ‘E-ACOLA’를 실행해 온 박승희 교수(특수교육과)로부터 시작됐다. 퇴임 소감을 묻자 최씨는 많은 사람 앞에 서서 퇴임 행사의 주인공이 될 생각에 떨린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2009년 1월 본교가 발달장애인 ‘지원고용(supported employment)’을 시작한 이래로 한 직원이 10년을 근속한 일은 처음이다. 1월26일 오후5시 ECC B155호에서는 최씨와 박씨의 10년 근속과 퇴임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약 50명이 참석한 소규모 행사였지만, 마지막으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두 사람에 화답하는 박수 소리는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박병현씨, 최정윤씨(왼쪽부터). 제공=박승희 교수
박병현씨, 최정윤씨(왼쪽부터). 제공=박승희 교수

두 사람이 본교에서 보낸 10년을 돌아보고자 행사 참석자들은 그동안의 근무 모습을 담은 영상을 다 함께 시청했다. 박씨는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중앙도서관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북트럭의 수많은 책을 정리하던 박씨의 일상은 이제 영상 속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이어서 작은 손으로 체력단련실의 젖은 바닥과 소도구들을 부지런히 정리하는 최씨가 등장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두 사람과 헤어지게 돼 매우 아쉽습니다.” 영상 속 자막에 두 사람의 동료들과 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씨와 박씨의 동료들은 그간 못다 한 말을 빼곡히 적은 커다란 롤링페이퍼와 꽃다발을 두 사람에게 안겼다. 꽃다발을 양팔로 가득 안은 박씨는 “오늘만큼은 침착하고 과묵한 척 해보겠다”며 첫 마디를 꺼냈다. “10년간 중앙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이화여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합니다.” 최씨는 “안녕하세요, 최정윤입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지만 힘차게 인사를 했다. 박승희 교수를 향해서는 양팔로 큰 하트를 그려 마음을 표현했다.

두 사람은 10년 간의 성공적인 근무를 도운 본교 대학원생 직무지도원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동료들의 축하 공연도 진행됐다. 전·현직 발달장애인 근무 직원이자 E-ACOLA 동료인 박혜신씨, 이정익씨, 홍승희씨가 두 사람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 ‘은혜’ 연주를 준비했다. 연주 초반 긴장한 듯 떨리던 선율은 완벽한 3중주(바이올린, 첼로, 플루트)의 하모니로 끝났다. 본교에서 단단하게 성장한 두 사람이 연상되는 연주였다.

박 교수는 “이번 10년 근속 축하 모임은 한 개인이나 집단이 정당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좋은 행사는 대강당에서 진행해서 재학생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행사 곳곳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행사는 본교를 넘어 대한민국 발달장애인의 통합환경에서의 고용을 기념하는 역사로 남았다.

1월26일 오후5시경 본교 ECC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직원 10년 근속 축하모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권아영 사진기자
1월26일 오후5시경 본교 ECC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직원 10년 근속 축하모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권아영 사진기자

 

성실히 일한 10년, 성장의 기회가 되다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동대문역에서 이대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매일같이 출근하던 최씨. 이런 일상도 1월30일로 마침표를 찍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본교를 떠나는 소감을 묻자 그는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일을 시작하며 자존감을 회복해 나날이 성장할 수 있었다. 손자국으로 얼룩진 거울, 수건, 바닥에 널브러진 스쿼시 공들까지. 학문관 체력단련실에서 학생들이 사용한 모든 것은 그의 손을 거쳤다. 넓은 공간을 청소하다 지칠 때면 쉬는 시간을 이용해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어머나’ 영상을 찾아보며 따라 부르곤 했다. “장윤정씨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너무 잘해요. 저희 엄마도 엄청 좋아해요.”

그는 자신을 옆에서 응원하고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박승희 교수님께서 제가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봐 주셨어요. 밝은 웃음으로 절 챙겨주시던 강화숙 팀장님도요.” 그의 출퇴근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회체육교육센터 강화숙 팀장은 최씨를 향한 응원의 말을 전했다. “워낙 일을 잘하니까 정윤씨는 어딜 가도 잘할 거예요. 더 오래 함께 할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죠.” 현재 최씨는 새로운 직장을 기다리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곳으로의 도약을 위한 경험의 10년

2022년 12월30일 본교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기념해 동료들이 선물한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있는 박병현씨. 제공=박병현씨
2022년 12월30일 본교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기념해 동료들이 선물한 꽃다발과 선물을 들고 있는 박병현씨. 제공=박병현씨

“직장동료들과 회식하고 유쾌한 농담을 하던 평범한 일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매일같이 가파른 중앙도서관 계단을 오르는 것도 일이 즐거워 전혀 힘들지 않았다던 박씨는 지난 12월30일 근무를 끝으로 교정을 떠났다. 근무 마지막 날엔 동료들이 꽃다발을 선물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학교 근처 맛집을 요일별로 방문하던 박씨에게 동료들은 “그러니까 살이 찌지”하며 장난을 치곤 했다. 동료들은 중앙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일한 박씨를 선배라고 불렀다.

“오늘도 학교 근처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전골 떡볶이를 먹고 왔어요. 식당부터 학교 건물 구석구석 모두 정이 들었는데 아쉬워요.” 반납 도서를 차에 싣기 위해 동료들과 향하던 학문관, 열람실 앞 반납함으로 걸어가던 ECC 계단 한 칸에도 그의 일상이 묻어 있다. 업무에서 힘든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시험기간에는 정리할 책이 특히 많았다”며 유쾌하게 답했다.

박씨는 “본인의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책을 분류해 정리하는 도서관 업무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2월1일부터 서초구의 한 도서관에서 즐겁게 근무하고 있다. 박씨에게 본교에서의 10년은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발전시킨 경험의 시간으로 남았다.

 

미션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박 교수는 “비장애인이 주로 일하는 통합 근무환경에서 발달장애인이 10년을 일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한 사람이 직장에서 10년을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축하받을 일이죠. 이화여대에서 두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제 눈으로 지켜봤다는 게 너무 뿌듯해요.” 박 교수는 1992년부터 본교 특수교육과 교수로 근무하며 꾸준히 장애인식개선과 고용문제에 앞장서 왔다.

현재 본교에서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1년마다 업무평가를 진행해 재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연장한다. 발달장애인 지원고용 10주년을 기념한 2018년 12월27일의 행사에서는 발달장애인 직원의 고용계약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늘리는 진전이 있었다.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고용이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지속적 근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근로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미션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본다. 그는 “장애인 근로자들이 다양한 교내 직무환경에서 근무할 기회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직원들은 중앙도서관, ECC휘트니스센터, 체력단련실, 인재개발원, 장애학생지원센터, 아동발달센터, 평생교육원, 산학협력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 교수는 비장애인 학교 구성원들과의 더욱 활발한 상호작용도 소망했다. “학교에서 자연스레 서로 인사를 건네는것처럼 발달장애인 직원을 학교 구성원으로 수용하고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로 생각해 주신다면 좋을 것 같아요.”

국내 대학 최초로 발달장애인 지원고용을 시작한 본교에서는 2023년 2월 기준 16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최정윤씨와 박병현씨가 본교에 남긴 발자취는 다른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에게도 밝은 길을 열어줬다. 두 사람의 업무는 끝이 났지만, 그들이 새롭게 그려갈 또 다른 역사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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