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현정(사회⋅18)씨는 요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푹 빠졌다. 그는 “연애 리얼리티에서는 소소한 공감과 설렘을 찾을 수 있다”며 ‘일상과의 연결성’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연애 리얼리티에 빠진건 노씨만이 아니다. ‘환승연애2’(2022), ‘나는 SOLO’(2021)와 같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환승연애2의 마지막화 생중계의 티빙 내 점유율은 98%까지 치솟았다. 이혼을 경험한 남녀의 사랑을 담은 ‘돌싱 글즈3’(2022) 방영 이후에는 3040세대의 결혼정보회사 가입이 급증하기도 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상화된 연애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상화된 연애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타인의 연애를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

연애 리얼리티의 가장 큰 매력은 타인의 연애를 제3자의 눈으로 보는 데 있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애 리얼리티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 ‘실제 상황이라 흥미진진해서’라는 답변이 전체의 44.4%로 가장 많았다. 강예빈(사교⋅21)씨 역시 “다른 예능과 달리 출연자들의 관계가 대본이 아니라는 점때문에 즐겨본다”고 말했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 박사 ‘비로소, 문화연구소’의 장효진 소장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실제성을 가진 이야기가 많이 소비되는 현실과, 소셜미디어에서 시청자가 자신의 감상과 의견을 덧붙이며 즐길 수 있는 점을 들어 연애 리얼리티의 흥행을 설명했다. 그는 “쌍방향 미디어 사용이 익숙한 지금 세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디어(프로그램)와 현실 간의 간극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간극을 ‘망상’으로 메꾼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라는 대중적 요소가 콘텐츠 산업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연애 리얼리티에 몰입하게 되는 걸까. 장 소장은 프로그램의 연출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의 연출 방식이 외국과 달리 출연자들의 감정선에 더욱 집중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트시그널’(2017)에서 마음에 들어하는 출연자가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마른 입을 다시거나 자꾸 시선이 옮겨지거나, 굳이 자리를 배회하는 식의 모습을 섬세하게 잡아내고 이 모습과 상대 출연자의 반응을 함께 살펴주는 거죠. 시청자가 이들의 감정선을 최대한 따라잡을 수 있도록 수십 대 카메라의 나노 편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이렇듯 세심한 연출로 출연자들의 감정과 행동에 공감하며 자신의 연애 경험을 되돌아본다. 환승연애2의 이진주 PD는 언론사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이) 본인의 지난 연애와 주변 친구들의 사례를 빗대어서 생각해주는 것 같다”며 “그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기획의 첫 목표였다”고 말했다.

 

왜곡되는 연애 이미지

연애 리얼리티를 통해 시청자는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 간의 관계와 그들의 공동 생활 모습을 보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다. 노씨는 “연애 리얼리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관계의 형태가 재미있다”며 “출연자들이 나누는 대화, 제스처들을 보고 스스로를 되돌아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애 리얼리티는 시청자들에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관계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동서울여성회의 조이다혜 회장은 연애 리얼리티에서 보여지는 관계의 단면성을 비판했다. 그는 “이성애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과 남성의 모습만이 재현되고 있다”며 이성애적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는 연애 리얼리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관계의 내용 또한 납작하다. 조이 회장은 “연애 리얼리티를 진행하는 동력은 질투심” 이라고 말한다. 그는 “(출연자들이)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아니라 의심하는 모습만이 강조된다”며 “소유가 중심이 되는 연인관계가 연애 리얼리티를 통해 강화된다”고 말했다.

‘체인지 데이즈’(2021)의 경우 권태기를 겪고 있는 커플이 서로 짝을 바꾸어 데이트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커플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고 질투를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질투와 경쟁이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소유하는 관계를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디어 통해 고착화되는 성고정관념

조이 회장이 총괄한 ‘대중매체 성평등 모니터링단’에 따르면 연애 리얼리티의 진행방식은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기도 한다. 체인지 데이즈에서는 데이트 시 남성에게만 자동차 선택권이 주어졌다. 비밀데이트를 할 때도 남성이 원하는 여성이 있는 장소로 가는 등 모든 이동 및 선택은 남성에 의해서만 이루어 졌으며, 여성은 남성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 이에 대해 조이 회장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연애를 리드하고 능동적 역할을 하는 것은 남성이며, 여성은 그들의 선택을 받는 수동적 주체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이미지에도 주목했다. 시청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연애의 참견3’ (2020)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은 ‘앵앵거리는 목소리’, ‘애교 섞인 말투’로 여성을 재현하며 남성은 주로 공감에 서툰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여성과 남성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것이 조이 회장의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점은 대부분 제작자의 연출을 통해 예방 가능하다. 아침 식사를 출연진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 함께 준비하는 등 관계의 평등함을 보여주는 상황을 설정할 수도 있다. 그는 시청자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미디어와 우리의 일상은 뗄 수 없는 관계에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시청자들이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판단하는 주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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